경기감사 신헌구(申獻求)가 등보할 일은, “지금 죽산부사 이두황의 보고에, ‘10월 14일에 본진이 보은(報恩)에 바로 들어가서 경리청(經理廳) 진남영(鎭南營) 장졸들과 함께 주둔한 연유는 전에 보고하였다’라고 하였고, 10월 16일 청주 병영(兵營)의 전령에 의하면, ‘지금 남적(南賊, 호남 동학농민군)이 노성(魯山)과 논산(論山)에 주둔하고 있고 그 형세가 매우 크니 빨리 회군하여 가서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16일 충청감사 관문(關文)에, ‘호남 비류(匪類)가 은진(恩報)을 침범하여 감영 형편이 한시가 급박하니 군대를 인솔해서 구원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17일에 공주(公州) 부강(芙江)에, 18일에 연기(燕岐)에 이르러 형편을 살피고 나서 바로 주둔한 것을 급히 보고합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잘 받았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