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병사 이장회(李長會)가 등보할 일은, “신의 병영 장졸이 장위영 진영과 합세해서 목천(木川)의 적을 토벌하러 간 연유는 전에 급히 보고했습니다.
지금 장위영 부영관 이두황과 신(臣)의 병영 우영관(兵營 右領官) 이용정(李容正)이 함께 보낸 보고를 보니, ‘10월 21일 묘시(卯時, 오전 5시∼7시)쯤 행군하여 목천(木川) 세성산(細成山)에 이르러 적의 형세를 상세히 살펴보았더니 깃발이 숲처럼 서있고 포성이 들판을 울렸습니다. 3개의 부대로 나눠 출발하여 반나절을 서로 버티다가 관군에게 공격을 당하여 적들이 무너져 달아나기에 수십 리를 추격하였고,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목천(木川)의 적은 실제로 심복(心腹)의 근심거리였습니다. 지금 이번에 두 진영의 영관이 군사를 운용하는데, 방도가 있어 한 번에 적을 대파하니 매우 가상합니다. 적 괴수의 머리와 적이 지닌 물건은 보고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성책(成冊)하여 도순무영(都巡撫營)에 올릴 계획입니다. 장위영의 군사가 공주를 구원하러 가도록 글을 지어 명령을 내려 주기를 급히 아룁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잘 받았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