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뢰기를, “출전한 영관(領官) 죽산부사 이두황의 첩보를 보니, ‘목천 세성산을 점거하고 있는 비류(匪類)가 수천 명이 되어 10월 21일 묘시(卯時, 오전 5시∼7시)쯤 군사를 인솔해서 그 곳에 도착하여 1개 소대는 동남쪽 기슭에서 위를 공격하고, 2개 소대는 북쪽 기슭아래 매복했으며 1개 소대는 접전하려고 주둔하였습니다. 적과 반나절을 대치하다가 그 날 신시(申時, 오후 3시∼5시)쯤 우리 군사의 공격을 받아 성을 버리고 서쪽으로 도망가자 이때 우리 군사가 먼저 성지(城池)를 접수하고 도망가는 적을 40리쯤 추격했습니다. 죽이거나 사로잡아 크게 완승을 거두었고 북접(北接)의 유명한 거괴 김복용을 사로잡았습니다. 획득한 군기를 성책해서 올려 보낸다.’라고 했습니다. 베거나 노획한 실제 수효와 군물(軍物) 및 곡포(穀包, 볏가마)는 따로 별단(別單)을 갖추어 올린다는 뜻을 감히 아룁니다.”라고 하니,
답하기를, “잘 알았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