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현감(橫城縣監) 유동근(柳東根)이 첩보할 일은, “홍천(洪川) 비도(匪徒)를 토벌하러 소모관과 함께 원주(原州) 포군(砲軍) 28명·본현 포군 100명·창군(鎗軍) 50명을 인솔해서 10월 17일에 출발하여 본현 청일면(晴日面) 춘당리(春堂里)에 머물렀습니다. 춘당리는 홍천 서석(瑞石)과 경계를 접해 20리가 넘지 않는 곳입니다. 그들의 수가 많고 군기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저들은 많고 우리가 적어 가볍게 상대할 수 없어 합세해서 토벌하자는 공문을 홍천(洪川)과 지평(砥平)에 보냈습니다. 때를 기다려서 함께 토벌하려고 그대로 주둔하였습니다.
10월 20일 묘시(卯時, 오전 5시∼7시)쯤 비도(匪徒) 500여명이 갑자기 진중을 침범해서 소모관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힘껏 토벌했습니다. 죽거나 다친 비도는 그 수를 셀 수 없었고, 사로잡은 자도 10여명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이었기에 목숨을 구제할 방도가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잘 타일러서 잘못을 고치고, 군오(軍伍, 군대의 대오)에 배치하여 군대 기물을 지어 나르게 했습니다. 그중에 조희준(趙希俊)과 고진성(高辰成) 등은 저들 중에 부두목으로 평소에 행패가 낱낱이 드러나서 바로 목을 베어 경계하였습니다. 형편에 따라 바로 소굴을 기습할 계획입니다. 진두(陣頭, 군대의 맨앞)에 소모(召募)하는 일은 아직 숫자가 정해지지 않았고, 이미 모집한 숫자는 지금 300여명이 됩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적에 분개하는 군사들의 마음이 매우 가상하다. 아직 춘천의 군대가 그 곳에 머물고 있고, 지평(砥平)의 군대는 벌써 떠났으리라 생각한다. 서로 호응하고 그 후의 형편을 계속 신속히 보고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