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유수(春川留守) 임상준(任商準)이 첩보할 일은, “본영에 속한 홍천현 동도(東徒)를 토벌하러 병정을 보낸 연유는 전에 신속하게 보고하였습니다. 10월 20일 해당 현감의 첩정에, ‘본영의 병정(兵丁)이 본현의 포군(砲軍)과 길을 나눠 화촌면(化村面) 영귀미(詠歸美) 등지에 행군하여 동도(東徒)가 모인 곳에 포를 쏘아 9명을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10월 26일에 연이어 해당 현감의 첩정을 보니, ‘본영의 병정이 지평(砥平)의 포군(砲軍) 및 본현의 포수(砲手)와 함께 화촌면(化村面)에서 서석면(徐石面)에 와서 동도 소굴에 포를 쏘아 죽은 자가 수백여 명이 되었습니다. 그 괴수를 죽이지 못해 후환(後患)을 낳은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군대는 바로 회군하고 즉시 공문을 보내 거주민을 위로하고 생업을 편안히 하도록 하고, 남은 무리를 막아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각별히 지시했다’고 하였습니다.
본영의 경내 각 처를 지키는 것을 더욱 엄중히 하고, 해당 현에 갇혀있는 심낙서(沈洛西)와 김지현(金之玄) 등 18명은 근본 이유를 상세히 조사했더니, 모두 토민(土民)으로 저들의 강요를 모면하지 못했으나 실정(實情)은 귀화에 근거해서 엄중히 타일러 풀어주었습니다. 뒤에 적은 적의 소굴에서 획득한 소와 말은 출전한 장졸에게 상으로 주었고, 총과 창은 본영에 들였습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계문하려던 참에 도착하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