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감사 신헌구(申獻求)가 등보할 일은, “지금 안성군수 홍운섭의 보고를 받아보니, ‘지난 달 10월 23일에 금영의 지시에 따라 참영관(參領官) 구상조(具相祖), 참모관(參謀官) 이윤철(李潤徹)·이상덕(李相德)·신효식(申孝湜)·황승억(黃昇億), 대관(隊官) 조병완(趙秉完), 교장(敎長) 김홍엽(金弘燁)·이봉춘(李鳳春)·이장혁(李章爀)·우기준(禹基㻐) 등과 함께 2개 소대를 이끌고 가서 공주(公州)의 효포(孝浦) 4곳에서 지키며 정탐했습니다.
호남적(湖南賊) 전봉준이 40,000명을 인솔하여 경천(敬川)을 약탈하고 공주로 향하는데, 옥천포(沃川包)의 동도(東徒) 수만 명이 대교(大橋)에 집결해서 전봉준과 합세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효포는 2곳(대교와 공주로 가는 전봉준의 동학군)과는 배와 등이 되어 적을 받는 처지이어서 바로 후퇴하였습니다. 대교에서 멀리 바라보니 동도 수천 명이 동네 앞의 넓은 들판에 깃발을 세워 둘러싸고 있어 몰래 등뒤에서 기습하여 서로 포를 쏘아 20여명을 죽이고 6명을 사로잡았으나 날이 저물고 병정도 피로하여 전진하거나 후퇴하는 것이 모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바로 회군하였습니다. 선봉진의 지시에 따라 돌아와서 공주에 주둔하였습니다. 사로잡은 6명은 목을 베어 사람들을 경계하였고, 획득한 집물(什物)은 적어 성책(成冊)해서 첩보합니다’라고 하기에 급히 아룁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잘 받았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