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봉(先鋒)이 첩보할 일은, “예산현감의 보고에 따라 충청감영과 왕복한 공문에, ‘비류(匪類) 수만 명이 예산의 신례원(新禮院)에 집결해서 예산·대흥(大興)·홍주(洪州) 등의 3개 읍의 의병 및 토병(土兵)과 서로 접전을 했습니다. 관병(官兵)이 패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비류가 예산읍에 바로 들어와 상황이 매우 급박하여 병정을 징발해서 구원하러 갔습니다. 바로 구원하지 않으면 예산읍이 함락되기에 장위영 부영관(壯衛營 副領官) 이두황(李斗璜)에게 휘하의 병정 4개 소대를 인솔하여 갑절로 길을 재촉해서 구원하라고 그 날 진시(辰時, 오전 7시∼9시)쯤 파송했습니다. 그러나 수십 리 길을 우회하는 고생이 있더라도 따라 내려가고 거슬러 가느냐에 따라 편리한 지가 정해지기에 넓은 길에서 출발했습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잘 받았다. 구원병이 벌써 있으니 초토사(招討使) 진영과 접촉할 듯하다. 그 뒤의 형편을 계속 신속하게 보고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