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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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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이 첩보함

선봉(先鋒)이 첩보할 일은, “지금 도착한 교도중대장(敎導中隊長) 이진호(李軫鎬)의 첩정에, ‘청주(淸州) 진중(陣中)에서 지난 달 10월 26일 자시(子時, 오후 11시∼오전1시)에 휘하의 병정과 진남영(鎭南營) 병정 100명 및 일본군 대대와 합세해서 출발하여 회덕(懷德) 지명장(至明場)에 이르렀더니, 수천 명인지 모르는 저들이 물 건너편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적의 기세가 제법 괴이하여 한바탕 혼전을 하다가 수십 명을 죽이니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였습니다. 사로잡은 동도(東徒) 13명 중에 정복기(鄭福基) 등 6명은 본래 농민이고 귀화를 애원하기에 타일러서 놓아주었습니다. 박성엽(朴聖燁) 등 7명은 못된 짓을 한 단서가 많아 매우 해괴하기에 문의(文義)의 남장(南場)에서 쏘아 죽여 사람들을 경계하였습니다.

공주(公州)로 가서 합세하려고 10월 29일에 행군하여 부강(芙江) 신대(新垈)에 도착했습니다. 정탐소식에, 저들이 회덕(懷德)에서 크게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의읍(文義邑)에서 회군하여 적을 토벌하려고 하는데, 떼어준 군량이 며칠 지나지 않아 떨어질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번 달 11월 9일부터 시작하여 영관(領官) 이하에서 마부(馬夫)에 이르기까지 318명 중에 서울에 올라간 마부 2명을 제외하면 실제 316명의 군량과 기마(騎馬, 타는 말) 및 복마(卜馬, 짐을 싣는 말) 43필의 죽 값을 모두 바로 넉넉하게 떼어주어 군색한 처지를 면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토벌해서 죽이거나 사로잡았다니 매우 가상하나 과천읍(果川邑)에서 헤어진 뒤로 이제야 한번 보고를 하니 군율에 있어 소홀하지만 군량과 반찬 및 돈은 전해주라는 회신을 보냈습니다.

연이어 11월 4일에 도착한 교도중대장(敎導中隊長)의 첩정에, ‘지금 비도(匪徒) 5∼60,000명이 옥천(沃川)에 모여 있습니다. 일본군 2개 소대와 교도대 1개 소대는 그저께 먼저 행군하여 주둔하였고, 대대(大隊)부대는 뒤따라 출발했으나 군량이 떨어져서 1개 부대도 배고픔을 모면할 수 없어 앞으로 적을 격파하는 날을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1달치의 군량도 남지 않았으니 잠시라도 주둔하는 곳에 바로 보내 달라.’고 하였습니다.

비류(匪類)가 회덕(懷德)과 옥천(沃川)에 출몰한다는 보고가 이어지나 그 정탐한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따로 정탐해서 그들을 토벌하고 나서 바로 연산(連山)으로 향했습니다. 군량과 반찬은 다시 보고를 하겠으나 애초에 여러 읍에서 조달할 수가 없고 그 형편이 갑자기 마련해서 보낼 수가 없습니다. 문의·회덕·옥천·공주·연산 등의 읍에서 지나는 곳마다 접대를 하고 나서 보고하게 하고, 또한 폐단 없이 대접하도록 회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교도대(敎導隊)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반드시 중도에 토벌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진퇴를 정하기 어려우니 군량을 즉시 보내고 그 곳에서 성화(星火)처럼 운반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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