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사(召募使) 정의묵(鄭宜默)이 첩보할 일은, “10월 16일에 상주(尙州)에 도착한 감영 감결(甘結, 상급 관청에서 하급관청에 내리는 공문) 내의 절해(節該, 공문의 요지)한 의정부 관문(關文)에, ‘양호(兩湖, 호남과 호서)의 비류를 지금 순무영(巡撫營)에서 군사를 내어 토벌하고 있어서 먼 곳의 사민(士民)중에 반드시 그 소문을 듣고 의기(義氣)를 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창원부사(昌原府使) 이종서(李鍾緖)와 전 승지(前 承旨) 정의묵(鄭宜默)을 영남소모사(嶺南召募使)로 임명해서 방어하는 모든 일을 분부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윤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교하신 뜻을 잘 받들어 시행하였습니다. 정의묵(鄭宜默)의 집이 있는 상주에 급히 지시해서 힘을 합쳐 구제하고 비류를 소탕해야 한다고 관문을 보냈고, ‘소모사의 집이 있는 읍(邑)에 감결이 도착하자마자 본집에 지시하여 바로 거행하게 하라. 창원부사가 아직 부임하지 않았으니 협조해서 구제할 방도는 그가 오기를 기다려서 상의하여 조치하도록 지시하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재주가 없고 못났는데도 외람되게 중임을 맡아 밤낮으로 근심하며 만에 하나라도 갚으려하고, 직무를 보는 것이 급해 하루라도 비울 수 없어 10월 19일에 상주에 도착해서 의병을 규합하여 빨리 비류를 소탕하려고 했습니다. 협조해서 구제할 방도는 창원부사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의논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잘 받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