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중대장(敎導中隊長) 이진호(李軫鎬)가 첩보할 일은, “11월 5일에 증약역(增若驛)에서 진군하여 옥천읍(沃川邑)에 도착했습니다. 중도에 사로잡은 5명의 비류(匪類)와 접주(接主) 중에 봉교(奉敎) 염유갑(廉有甲)과 중정(中正) 박성권(朴聖權) 및 조백길(曺伯吉) 등 3명은 쏘아 죽였고, 이덕수(李德秀)와 조방재(趙防齋) 등 2명은 일본군 대대장이 서울로 압송해갔습니다.
장차 비도들이 집결한 곳으로 진군해서 적을 추격하려 하나 군수(軍需)가 부족하여 배고픔과 추위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적을 토벌하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행군하는 일은 일본군 사관(士官)의 지휘를 따르고 있고, 지금 수만 명인지 알 수 없는 저들은 황간(黃磵)·영동(永同)·청산(靑山) 등에 모여 있습니다. 다만 교도병 50명으로 적을 격파하라고 지휘하여 명령을 내었기에 미리감치 매우 걱정스럽습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군량·반찬·돈은 1달치를 벌써 선봉진(先鋒陣)에 내려 보냈으니 바로 찾아가고, 행군하는 형편은 계속 신속하게 보고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