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군관(別軍官) 홍재준(洪在駿)이 수본(手本, 하관이 직속상관에게 자필로 쓴 보고서)할 일은, “11월 5일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1시)쯤 서울에서 떠나 7일 신시(申時, 오후 3시∼5시) 정각에 무사히 금천군(金川郡)에 도착해서 본군의 수령을 만나 탐문했더니, ‘본영의 군관(軍官) 고정필(高廷弼)이 11월 6일에 이곳에 왔고, 평산(平山)의 비도(匪徒)가 소란을 일으켜 관사(官舍)를 불태워 해당 수령이 잠시 피신했다는 읍(邑)의 전후사정과 일본군 15명이 비도 8명을 쏘아 죽이고 4명에게 부상을 입히자 나머지는 용두촌(龍頭村)으로 퇴각했으며, 용산(龍山) 일본군 71명이 진군하여 추격하는 연유를 수본에 적어 보내고 나서 바로 황주(黃州)로 갔다’고 했습니다. 본군의 수령과 함께 보병(步兵) 소좌(少佐) 지타쿠(?時澤義失)을 만나보고 먼저 영을 받들어 위로하고 비도를 격퇴한 노고에 사례를 했습니다. 평양의 일본군 소식은 아직 정확한 소식이 없어 오늘 평산(平山)으로 가서 상세히 행보를 알아보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잘 받았다. 가서 그 형편을 신속하게 보고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