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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일러두기

죽산부사 이두황이 첩보함

죽산부사 이두황이 첩보할 일은, “11월 7일에 해미(海美)에 모인 적을 격파한 연유는 전에 급히 보고를 했습니다. 남은 적이 도피해서 다시 해당 읍의 옛 산성에 모이고 그 성이 넓고 편평해서 많은 사람을 들일 수 있어 바로 2개 소대를 보내 대관(隊官) 윤희영(尹喜永), 별군관(別軍官) 조편(趙翩)·윤지영(尹摯榮), 교장(敎長) 추광엽(秋光燁)·박성희(朴聖熙)·장세복(張世福)·오순영(吳順永)·이경진(李景振)에게 병정을 인솔하여 공격하게 해서 그 성을 격파하고 그 적을 내쫓았으며 버려진 기계(器械)가 매우 많았습니다. 또한 500명이 성의 남쪽 저성(猪城)으로 가서 점거하려고 하기에 다시 1개 소대를 보내 별군관(別軍官) 이겸래(李謙來)와 교장(敎長) 김대유(金大有)·최기성(崔基成)에게 병정을 인솔해서 추격하게 하여 일개 진영(陣營)을 죽이고 해산시켰으나 병사가 피로하여 거두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참영관(參領官) 원세록(元世祿) 휘하의 대관((隊官) 윤희영(尹喜永)·이규식(李圭植), 교장(敎長) 이경진(李景振)·양기영(梁基英)·최기성(崔基成)·홍선경(洪善敬)·김인길(金仁吉)을 나누어 별군관(別軍官) 윤지영(尹摯榮)·김광수(金光洙) 등과 함께 1개 중대를 인솔하여 서산(瑞山)의 매현(梅峴)에 나가 적의 소굴과 맞닥뜨렸습니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았더니 깃발을 가에 세우고 가운데에 모여 밥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을 이용하려고 몰래 서산(瑞山)읍에 들어가서 조금 쉬었다가 황혼에 바로 적진(賊陣)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때에 소리를 지르고 에워싸고 쏘았는데, 적도 저항을 하여 쏟아지는 탄환이 서로 쌓이고 대포를 자주 쏘았습니다. 쉬거나 공격하여 거의 1시간이나 지났습니다. 적이 쌓아놓은 화약에 불이 붙어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갈라지는 듯 굉장히 큰 소리가 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수천 명의 적이 갑자기 흩어져서 도망가고 아군도 크게 놀라 잠시 뒤에 정신을 차려 수백 보를 추격해서 흩어진 기계를 거두어 읍에 돌아왔습니다. 요기(饒飢)를 하고 나서 전임 수령이 피살된 곳을 찾아내었는데 바로 읍내의 율장촌(栗場村)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죽이고 바로 군대를 돌려 해미성에 돌아오니 닭이 3번 울었습니다. 접전할 때에 쏘아 죽인 숫자는 밤이 어둡고 일정이 촉박해서 셀 겨를이 없었습니다. 사로잡은 포로는 모두 옷의 뒤에 적의 낙인(落印)이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었기에 공초(供招, 죄인을 심문한 조서)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쏘아 죽인 자가 23명이었고, 획득한 군물(軍物)의 실제 숫자를 적어 성책(成冊)하여 첩보하였습니다. 홍주(洪州)에 주둔한 일본군 사관(士官) 아까미쓰(赤松國封)의 문이(文移)에, ‘공주가 위급하니 각 진영을 모아 일제히 남적(南賊, 호남의 동학군)을 토벌하라’는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곳의 남은 적을 버려두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행군하고 날을 정해 공주로 가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제내에, “계문(啓聞)하려던 참에 (첩보가) 도착했다. 연이어 승전소식을 듣고, 사졸(士卒)이 명령을 수행하니 매우 가상하다. 포상이 있을 것이다. 그 뒤의 형편을 계속 신속하게 보고하라”고 하였다.

주석
문이(文移) 이 관청에서 맡았던 사건을 다른 관청으로 옮길 때에 보내는 공문으로 이문(移文)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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