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군관(別軍官) 홍재준(洪在駿)이 수본(手本, 자필로 쓴 보고서)할 일은, “11월 8일에 금천읍(金川邑)에 이르러 보낸 수본(手本)은 이것보다 먼저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날 평산부(平山府)에 도착하여 탐문해보니, 용산(龍山)의 일본군 70여명이 11월 5일에 평산에 왔다가 해주(海州)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뒤를 밟아 따라가서 11일에 해영(海營, 황해 감영)에 이르러, 평양(平壤)의 일본군 수백 명이 8일 진시(辰時, 오전 7시∼9시)쯤 이곳에 와서 비도(匪徒)가 강령(康領)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몸을 일으켜서 쫓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용산의 일본군이 10일에 지인청(知印廳, 수령의 심부름을 하는 구실아치가 근무하는 곳)에 묵고 있기에 보병(步兵) 소위(少尉) 스즈끼(鈴木彰先)를 만나보고 명령을 받들어 위로하였습니다. 초경(初更, 오후 7시∼9시)에 다시 정탐의 보고를 들어보니, 어제 늦게 신천(信川)의 수유현(水踰峴)에 이르렀는데, 동도(東徒)가 안악(安岳)·신천 등지에 모여 일본군과 접전하려고 수천 명이 해영으로 다시 들어와 영(嶺)을 넘으려고 할 때, 일본군이 마침 당도하여 역습해서 포를 쏘아 죽인 자가 거의 백여 명이 되고, 나머지 비도도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일본군이 뒤쫓았지만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황주(黃州)의 병사들은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 매우 두렵고 걱정스럽습니다.
제(題) : (보고문을) 잘 받았다. 앞으로의 행보도 연이어 신속하게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