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감사 신헌구(申新獻求)가 등보합니다.
오늘 죽산부사 이두황(李斗璜)이 보고한 바를 보니, “11월 7일 해미성에 주둔하고 있는 적을 격파한 사유를 이미 첩보하였습니다. 나머지 무리들이 해미죽산읍의 옛 산성 및 땅저성(猪城)에 다시 모이자 잇달아 사살하고 이어 1중대(中隊) 병력을 이끌고 다시 서산의 매현(梅峴)에 가서 접전할 때에 적이 쌓아둔 화약에 불에 붙어 꽝하는 소리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듯 하니, 적의 무리 수천명이 일시에 흩어져 달아났는데 이 곳은 읍 밑의 율장촌(栗場村)이었습니다. 사살된 자는 미처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포로로 잡은 23명도 또한 총을 쏘아 죽였습니다. 또 홍주에 머물러 있는 일본군 장교 아까마쯔 고쿠보(赤松國封)가 보내온 공문에 따라 나머지 무리를 포기하고 곧바로 공주에 나아가려고 하오며, 갔으며, 노획한 군수품은 책으로 작성하여 첩보합니다.”
라고 하니, 동 군수품은 기록하여 치계합니다.
제(題) : 등보가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