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목사 이승우(李勝宇)가 등보합니다. 이번에 도착한 대흥군수(大興郡守) 이창세(李昌世)의 첩정 내용에 “비류(匪類)들이 예산(禮山)에 둔취(屯聚)해 있으므로, 11월 2일에 현지 출신 토중군(土中軍) 윤성묵(尹成默)으로 하여금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토벌하게 하였습니다. 두 놈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세 놈을 생포하였으며, 병장기를 획득하였고, 적도들은 싸움에 져서 흩어졌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산군수(韓山郡守) 정대무민(丁大懋)의 첩정이 도착하였는데, “여러 읍의 비류들이 날마다 무리들을 불러 모아서 이미 도망친 오경옥(吳敬玉), 오명삼(吳明三 ) 형제와 함께 서천(舒川)에 둔취하니, 더욱 도당(徒黨)들이 늘었습니다. 이들이 한산 경내를 침입하여 우마와 전곡(錢穀)을 약탈하였기 때문에, 수성장(守城將長) 김련(金鍊)으로 하여금 병사 20명을 이끌고 부대를 나누어 협공하게 하여, 그 무리를 크게 쳐부수고 19명을 생포하여 그대로 회군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접수한 예산에 거주하는 전 부사(前府使) 이시우(李時宇)의 문보(文報) 내용에 “비류가 창궐하여 군기(軍器)를 약탈하고 장리(長吏, 수령을 일컬음)를 수령과 아전을 살해하고 마을을 소탕하므로 분통을 이기지 못하여 동지 4백인을 규합하였습니다. 적도가 예산(禮山)에 모여 있기에 11월 8일 병사를 이끌고 가서 포위하여 2명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23명을 포획하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도망가 흩어졌습니다. 영솔군관(領率軍官) 홍성한(洪聖漢)과 영관(領官) 김형제(金亨濟)는 몸을 떨쳐 먼저 올라가 대포 3좌(坐)를 탈취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흥군수 이창세와 한산군수 정대민은 고립된 성의 허약한 병졸들을 분격시켜서 적을 공격하고 쳐서 괴수를 사로잡으니, 여러 고을에서 본받아 창도하여 비도가 자취를 감추게 하였습니다. 한산군 수성장 김련(金鍊), 대흥군 현지 출신 토중군 윤성묵(尹成默) 및 출전한 군졸들을 권장하여 격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 부사 이시우는 의를 지키고 적에게 분노하여 병사들을 모집하고 적을 토벌하였으니, 극히 가상한 일입니다. 이에 급히 보고합니다.
제(題) : 대흥과 한산 두 읍의 수령이 분격시켜 적을 토벌하였고, 이시우는 의를 지키고 적을 쳤으니 모두가 가상한 일이다. 이후의 상황은 연속 급히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