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수사(黃海水使) 구연팔(具然八)이 등보합니다.
지난 10월 25일 해주ㆍ강령ㆍ옹진ㆍ장연 등의 읍에서 동도 수만명이 해주에 모여 작경(作梗)을 행패를 부린다고 하기에 신은 시기에 따라 변고에 대처하려고 군기를 수리하였습니다. 동도가 이 사실을 알고 10월 28일 수 천 명이 본영에 모여들어 성문을 깨뜨리고 본영에 난입하여 총과 포를 마구 쏘아대었습니다. 이어 군고(軍庫)를 부수고 안에 있던 총과 창, 활과 칼, 탄환, 무기를 모두 탈취한 뒤, 각 관청(廳)에 멋대로 가서 영(營)과 부(府)에서 관장하는 문서를 모두 불태우고, 운주헌(運籌軒)과 각 관청, 교리(校吏)와 백성들의 집을 허물어뜨렸습니다. 당시의 광경은 형세가 매우 위급하였고, 신 또한 부상을 당하여 중과부적(衆寡不敵, 적은 수효로는 많은 수효에 대적할 수 없음)으로 막을금제(禁制)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상한 일이 있게 되었으니, 삼가 크게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대죄(待罪)하옵니다. 도망친 백성들은 본업에 돌아오지 않게 할 수 없었으므로 방문을 내걸어 효유하였더니, 점차 돌아와 안정되었고, 모여둔취해 있던 동도들도 스스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후일의 정세를 아직 헤아리기 어려우니, 급히 아룁니다.
제(題) : 비류들이 창궐하여 감영과 수영을 침입하기에 이르다니 극히 통탄스럽다. 우리 병사와 일본병사들이 아마 도착하였을 것이니, 힘을 합쳐 토벌하여 며칠 내로 소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