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감사 박제순이 등보합니다.
오늘 접한 공주영장(公州營將) 이기동(李基東)의 첩정 내용에 “이달 11월 14일에 영장(營將)이 일본군 대위와 함께 행진하여 일본병사들은 공주 용수막(龍水幕)에 주둔하였고, 영장은 그대로 경천역(敬川驛)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이때에 멀리서 바라보니 연산읍(連山邑)에서 불빛이 충천(衝天)하고, 포성이 크게 진동하였는데, 계속 탐지해보니 교도소(敎導所)의 병사들이 적병과 접전하고 있었습니다. 노성(魯城)의 봉수대(烽燧臺)에서도 불빛이 일고 적병이 사방에서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날은 저물고 병사가 적어 회군하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통위영 대관(統衛營隊大官) 오창성(吳昌成)을 만나 두 부대가 합쳐서 숙박하였습니다. 해시(亥時, 오후 9시~11시) 쯤에 일본군 진중(陣中)에서 지시가 왔는데, ‘자시(子時, 오후 11시~오전1시)에 경천으로 행진하니 귀하의 부대와 통위영 병사들이 경천에 와서 합세하라’는 것이어서, 곧바로 통위영의 부대와 함께 경천 등지에 달려갔습니다. 해가 뜰 무렵 갑자기 노성읍에서 포성이 나는 것이 들리자 곧바로 달려가다가 일본군 대위를 만났습니다. 봉화대(烽火臺) 아래로 내려오면서 연달아 총을 쏘아 죽이니 그 무리 몇 만 명이 논산(論山)쪽으로 도망을 갔다고 하였습니다. 일본군 대위는 통위영과 장위영의 병사와 합세하여 쫓아간다고 하였고, 공주영장 이기동은 돌아오는 길에 노성에 들어가서 비류(匪類)들이 쌓아둔 쌀 51석을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운반하라고 단단히 지시하였습니다. 또한 길에서 청산(靑山)에서 돌아오는 일본군 100여 명을 만나 그들에게 곧바로 논산으로 가게 하였고, 경천에 되돌아와서 또 비류들이 쌓아두었던 쌀 127석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 운반하게 해서 바치도록 했습니다. 비류 4명을 쏘아죽이고 이어 봉명동(鳳鳴洞)에 숙박하였는데, 내일 진(鎭)에 돌아갈 계획입니다”라고 하니, 급히 아뢰옵니다.
제(題) : 이것은 큰 승리이다. 노성 전투 이후의 형세를 밤을 새워 급히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