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천현감 정기봉(鄭基鳳)이 첩보합니다.
방금 도착한 전령 내용에 “군사들이 목천에 이르러 적들을 참살하고 잡아들여 소탕하니, 경내의 백성들이 이 때문에 편안하게 되었다. 의정부에서도 임금께 아뢰어 목천현감이 그대로 호서소모관을 겸하게 하였다. 목천읍에서 머물고 있으면 지금 전령이 도착하는 즉시 부임하여, 기호(畿湖) 등지를 토벌하고 안무하는 방도를 더욱 단속하여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하고, 상황을 급히 보고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달 11월 초 9일에는 포군(砲軍)을 거느리고 다시 진천쪽으로 가서 포위망에서 빠져 도망친 거괴를 잡았습니다. 이미 11월 초 5일 임금의 은명으로 목천현감에 제수되었는데, 잇달아 보내온 전령의 내용을 받들어 급히 호서소모사에 부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일초(一哨)의 군사를 거느리고 11월 14일 오시(午時, 오전 11시 ~오후 1시)에 부임하였는데, 적을 쳐서 안정시킬 대임이 시급하니 재빨리 성실하게 일을 도모하였습니다.
어제 듣기에 비류들이 청주에 창궐하고 있다고 하므로, 오늘 11월 15일 본진을 이끌고 청주, 진천 등지로 향했습니다. 이미 붙잡은 비적의 괴수 임사손(林四孫)ㆍ윤녹이(尹彔伊)ㆍ 박문권(朴文權)ㆍ이판길(李判吉)ㆍ이현구(李玄九)ㆍ정준복(丁俊福)ㆍ정준득(丁俊得)ㆍ한치삼(韓致三)ㆍ강창관(姜昌寬)ㆍ강복록(姜卜彔)ㆍ김의재(金義在) 등 11놈은 죽여야 할 만한 흔적이 남김없이 드러났고, 동민(洞民)들이 죽여야한다고 말하기에 모두 군률(軍律)을 시행하였습니다. 노획한 총과 창, 탄약과 탄환, 적몰한 가산은 나열해서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올려 보냅니다.
군병을 모집할 때에 의로운 선비들이 용감하게 포군으로 자발적으로 왔는데, 그 중에서도 유학(幼學) 정기조(鄭耆朝), 순무영 참모(巡撫營參謀) 이동현(李東鉉), 유학(幼學) 유원무(柳遠茂)ㆍ박종화(朴宗化)ㆍ박종현(朴宗鉉) 등 5인은 모의할 때 좋은 생각을 내었고 험난한 상황하에서도 피하지 않은 자입니다.
출신 (出身) 이병식(李秉植)ㆍ서상구(徐相龜)ㆍ조병훈(曹秉勳) 3인은 마땅한 지위가 없고 일을 맡기기가 어려워서 임시로 군관(軍官)으로 차정하였는데, 작성(鵲城)의 전투에 몸소 포석(砲石)을 무릅쓰고 먼저 올라가 적과 충돌한 자입니다.
본읍의 하리(下吏) 이주현(李周鉉)은 길을 안내하고 험한 곳과 평탄한 곳을 소상하게 가리켜주어서 계책을 철저하게 정하게 한 자입니다.
경교(京校) 송창식(宋昌植)은 노고를 꺼리지 않고 비류(匪類)를 염탐하여 체포한 자입니다.
포병(砲兵) 김남극(金南極)ㆍ강경희(姜京熙)ㆍ김만건(金萬建)ㆍ김창업(金昌業)ㆍ김돌작(金乭勺)ㆍ이국현(李國鉉) 등 6명은 포군을 통솔하고 거괴를 잡아 죽인 자입니다. 공로를 포상하여 권면함이 마땅합니다.
제(題) : 계문(啓聞, 임금께 아뢰는 글)이 차례로 도착하였다. 작성한 책은 받았다. 여러 사람들의 공로는 마땅히 의정부에 보고하여 포상함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