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군수 성하영이 첩보합니다.
이달 초 7일 판치(板峙)에서 선봉진의 영지(令旨)에 따라 이인(利仁)으로 부대를 옮기고 무사히 밤을 지냈습니다. 초 8일 오시(오전11시 ~ 오후1시) 경에 적도들이 경천(敬川)에서 몰려 와서 도처에 불을 지르고 산으로 올라가 에워 쌓았습니다. 이에 통위영 대관(隊官) 백낙완(白樂浣)ㆍ윤영성(尹泳成), 경리청 교장(敎長) 김명환(金明煥)ㆍ장대규(張大奎)ㆍ정재원(鄭在元)ㆍ정인갑(鄭仁甲), 순영 별군관(巡營別軍官) 장인국(張仁國)과 함께 2개 부대 병력을 나누어 거느리고 산에 올라가 서로 대치하였습니다. 날은 저물고 적의 기세는 점점 커져가자 선봉진의 지휘로 회군하여 우금치로 물러나 밤을 지냈습니다.
다음날 11월 9일 사시(巳時, 9시-11시) 경이 되자, 수 만 명의 적도들이 산과 들에 가득차고, 대포 소리는 뇌성 치듯 하였으며, 탄환은 우박처럼 떨어졌습니다. 이 때 서산군수가 계책을 내어 부대를 나누어 양쪽에서 총을 쏘게 하고, 일본 병사 50명과 함께 적진을 격파해 들어가니, 총에 맞아 죽은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에 적도들이 대포와 총과 창, 기치 등의 물자를 포기하고 죽어라고 도주하였습니다. 본 통위영의 대관(隊官) 조병완(曺秉完)ㆍ이상덕(李相德), 참모관(參謀官) 이상덕(李相德)ㆍ이윤철(李潤徹)등은 여세를 몰아 10여 리나 추격하여 사살하였습니다. 저들 무리들은 탄환에 맞아 죽거나 겁이 나서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살아 남은 무리들은 고개를 넘어 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이 너무 깊어 부득이 회군하였습니다. 이틀간 총을 어지러이 쏘는 중에 병정 2명이 탄환에 맞았습니다.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상태가 극히 참혹합니다. 노획한 물자는 이미 선봉진에 올려 보냈으며, 그 내용은 책을 만들어 급히 보고합니다.
제(題) : 연이어 이기다니 매우 가상하다. 즉시 임금께 아뢸 것이다. 더욱 힘써 전진하여 토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