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께 아뢰었다.
“방금 선봉장 이규태가 11월 15일 보고한 바를 보니, 출진한 장위영 영관 죽산부사 이두황의 첩보에 ‘이달 11일에 유구에 진출하여 의병소에서 잡아 보낸 비류(非類)들의 공초를 받았더니, 이른바 충경포(忠慶包) 4,5천명이 그날 밤 밤이 깊어지면 경군(京軍) 진영을 약탈하기로 약속을 정했다고 하므로, 듣고서 깜짝 놀라 밤새도록 병사를 보내 적의 소굴을 직접 쳐들어가 천 여 명을 포획하였습니다. 그 중에 거괴 최한주(崔漢主) 등 27놈을 처단하였고, 남은 무리는 다스리지 말라는 뜻을 유념하여 엄히 징계하고 석방하였습니다. 또한 대흥읍에서 잡은 비류 19놈을 즉시 처단하였습니다.’라고 하니, 이에 감히 아룁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답하시기를
“알았다.”
라고 하시었다.
(번역 : 김봉곤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