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관찰사 정현석(鄭顯奭)이 첩보(牒報)합니다.
비류 수 천명이 강령(康翎)에 둔취하고 있으므로 황해감영에서 교졸(校卒) 20명을 일본병사 70명과 함께 이달 11월 24일 떠나 보냈는데, 강령현에 이르러 적과 접전하여 총살한 자가 1명, 생포한 자가 13명이었습니다. 나머지 무리들은 거의 모두 도망가 숨었습니다. 그 중에서 접주(接主) 조해증(趙海增), 접사(接司) 최공명(崔公明) 두 놈은 일본군 대장 스즈키 아키라(鈴木彰)가 경사(京師, 서울)로 압송해가려고 하므로 우선 칼을 씌워[구격(具格)] 가두었고, 접주 김용헌(金溶憲) 등 11놈은 본영에서 잡은 접주 오봉석(吳鳳石)과 함께 16일 신시 경에 군민(軍民)들을 크게 모아 효수하여 대중들을 경각시켰습니다.
제(題) : (첩보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