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병사(黃海兵使) 이용관(李容觀)이 첩보(牒報)합니다.
11월 4일 비로소 비도(匪徒)가 창궐(猖獗)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달 10월 25일 황해감영을 침범(侵犯)하기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매우 놀라서 교리(校吏)를 별도로 차정하여 정탐(偵探)하게 하였습니다. 11월 9일 도착부(到付)한 관문(關文)에 “11월 2일 황해감영에서 아뢰기를, ‘지금 해주(海州)의 비류(匪類)가 무리를 모아 소란을 일으키고 황해감영을 침범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니 지원병을 징발하는 일을 지체하면 마땅치 않으니 부당하여, 장계를 올려 ‘ 해병영(黃海兵營)의 포군(砲軍) 중 50명을 정선하여 해당 장관(將官)이 거느리고 가서 지원하도록 황해수사에게 관문(關文)을 보내 신칙(申飭)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하였더니, 전교하기를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본영(本營: 순무영) 군관(軍官)에게 관문을 휴대하고 내려가도록 하였으니, 관문이 도착한 즉시 각별히 정선하고 신속히 징발해가지고 각각 담당 장령(將領)에게 날짜를 정해서 지원하도록 하라. 정련되고 날카로운 무기와 넉넉한 군량(軍粮)은 해당 황해병영에서 마련하도록 하되 소홀히 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며, 또한 각 진영(鎭營)에 관문을 발송하여 곧바로 교졸(校卒)을 보내 접주(接主)·접사(接司)·도집(都執) 명색을 가진 놈들을 수색하고 체포하여 그 상황을 우선 즉시 급히 보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본 황해병영은 이미 8월 병화(兵火)가 났을 때에 군기(軍器)가 유실되어 전혀 꼴이 말이 아닙니다. 포군(砲軍) 명색도 난리에 도망치고, 수하(手下)의 노예(奴隸) 또한 10여 명에 불과합니다. 힘은 약하고 세력은 고단(孤單)하여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어떻게 조치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도착한 관문의 사연이 위와 같이 정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흩어진 군인들을 불러들이고, 무기(武器)를 거두어 모아서 바야흐로 지원병을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11월 10일 정탐하러간 교리(校吏)가 돌아와 아뢰기를 ‘해주 비류는 일본 병사들이 이르러 오자, 각자 도망치고 흩어졌습니다.’고 하니, 흩어진 군인들을 불러 모아 헛되이 날만 보내고, 창궐할 때 잡아들이지 못했으니, 황송한 마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접주·접사·도집 명색은 도처에 수색 체포하라는 뜻으로 각 진영(鎭營)에 관문을 발송하여 신칙(申飭)하였으며, 해주의 비류는 현재 이미 흩어졌기 때문에 지원하는 일은 우선 정지하였으니, 병영의 교졸이 여러 날 체류하는 것도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과 관계되므로 올려 보내니, 참작하여 처분(處分)하십시오.
제(題): 일본 병사들이 왔다고 해서, 우리 병사들의 향도(鄕導)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병사를 징발하여야 하거늘, 지금 위와 같은 첩보는 참으로 뜻밖이다. 제김이 도착한 즉시 형지(形止)를 발송하여 급히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