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敎導) 중대장(中隊長) 이진호(李軫鎬)가 첩보합니다.
11월 12일에 금산에 이르렀으며, 11월 13일에는 일본군 대대장(日本大隊長) 미나미 쇼시로(南少四郞)가 곧바로 대대(大隊)를 이끌고 진산(珍山)을 향하여 전진하였습니다. 교도소(敎導所) 병사는 일본군 중위 히라기 조다로(白木城太郞)와 함께 행군하여 14일에 용담(龍潭)에 이르러 저 몇 천 명이나 되는 무리와 접전하여 3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포한 동도 320명 가운데 서도필(徐道弼)·박만호(朴萬浩)·이만실(李萬實)·조윤삼(趙允三)·박치팔(朴治八)·김윤일(金允一) 등 6명은 모두 총살하고 그 나머지는 타이르고 석방하였습니다.
11월 16일 진안(鎭安)에 이르러 또 동도 수천 명과 맞닥뜨리게 되자 접전(接戰)하여 수십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11월 17일에는 고산(高山)에 이르러 동도 수백 명과 접전(接戰)하여 3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1월 18일에는 또 저 동도 몇 만 명과 마주치자 혼전(混戰)하여 수백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포한 30명 중 이른바 접사(接司) 이만학(李晩學)․여관서(呂寬西)․김치서(金致西) 등 3놈은 본진(本陣)에 수감하고, 그리고 창성도(倉聖道)․임성원(林聖元)․김중이(金仲伊) 등 3놈은 사살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타이르고 풀어주었습니다.
교도소 병사와 일본병사는 하나도 다친 사람이 없었습니다. 빼앗은 군수물자는 고을 읍이 대부분 텅 비었기 때문에 총(銃) 200자루․창(槍) 300여 자루는 깨뜨려 부수고, 화약(火藥) 1000여 근은 물에 떠내려 보냈으며, 연환(鉛丸) 10여 말은 불려서 주련하고, 긴요하지 않은 각종 물건은 소각하였습니다.
제(題): 계문(啓聞)하려던 차에 첩보가 도착했다. 연이은 승첩(勝捷)이 잇따르고, 사졸들이 명령을 잘 따라주니, 매우 가상하다. 이후의 상황도 계속 신속히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