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감사 박제순(朴齊純)이 등보(謄報)합니다.
경군(京軍)이나 일본 병사가 각 고을을 지나간 연유는 이미 치계(馳啓)하였습니다. 연이어 각 읍에서 보고한 바를 보니, “경군(京軍)과 일본병사 700여명이 11월 9일 옥천(沃川)에 이르러서 11월 10일 금산(錦山)을 향해 출발했다.”고 하였습니다. “별군관 윤영렬(尹英烈)이 거느린 의병(義兵) 4백여 명이 11월 17일 천안에 도착했다.”고 하였으며, “일본병사 40명이 11월 16일 문의(文義)에 이르러서 11월 17일 옥천(沃川)으로 행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일본병사 180명이 11월 19일 아산(牙山)에 이르렀다가 당일 평택(平澤)으로 떠나갔다.”고 하였으며, “일본병사 70여명이 11월 18일 옥천(沃川)에 이르러서 11월 19일 영동(永同)으로 떠났다.”고 하였으며, “경군과 일본병사 61명이 11월 18일 연산(連山)에 이르렀다가 11월 19일 진산(珍山)으로 떠나갔다.’고 하므로 아울러 급히 보고합니다.
제(題): 등보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