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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일러두기

충청감사 박제순이 베껴서 보고함

충청감사 박제순(朴齊純)이 등보(謄報)합니다.

연이어 호연초토사(湖沿招討使) 이승우(李勝宇)가 보낸 이문(移文)을 받아보니 ‘한산․임천은 비류가 창궐해서 병사를 징발해가지고 이끌고 가야 토벌할 수 있습니다. 11월 19일 신시(申時: 오후 3시~5시) 경에 홍주․보령․남포․비인에서 패배한 적병(賊兵)이 서천(舒川)으로 진입하자, 관군은 선봉(先鋒)이 끊기고 말았으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지원병을 보내주어야 힘을 합하여 토벌할 수 있습니다.’는 제사가 있사연이었습니다. 신의 영에서는 일찍이 서산군수(瑞山郡守) 성하영(成夏永)에게 영칙(令飭)하여 밤낮을 안 가리고 지원하게 했더니, 11월 20일 성하영이 2개 소대(小隊)의 병정을 이끌고 치달려 서천에 진입하여 적병을 크게 격파하자,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태반은 강을 건너 임피(臨陂)로 도주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서천군수 유기남(柳冀南)이 보낸 첩정을 받아보니 ‘11월 17일 홍주․보령․남포․비인의 유회소(儒會所) 병사 8,000여 명이 본 서천군에 왔다가, 11월 19일 적병(賊兵)이 둔(屯)을 치고 있는 한산에 갔는데 적병(賊兵)이 대략 수천 명이나 되었으나, 다수로써 소수를 공격하자, 마치 썩은 나무처럼 기세가 꺾여버리고, 미처 교전도 못하고 후퇴하여 서천으로 들어갔습니다. 추후에 적병이 성 아래 산언덕을 점거하고 주둔하자, 11월 20일 유회소 병사는 성을 나와 적들을 토벌하겠다고 성언(聲言)하면서, 모두 비인으로 달려갔고, 그 틈에 적(賊)들이 마침내 성을 침입하여 관아(官衙) 및 민가(民家) 150여 가구를 방화하여 소진되었습니다. 추운 계절에 집이 없어 떠돌고 있으니 매우 가엾습니다. 대개 명칭은 유회소라고 했지만 비도(匪徒)로 행동하는 자가, 함부로 진중(陣中)에 침입하여 이런 변란을 일으켰으니 억울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일본 소위(少尉) 아까마쯔 고쿠보(赤松國封)가 금방 달려와서 ‘아마 뒷수습은 잘 할 것 같습니다.’고 하였고, 서산군수 성하영은 잠시 서천․한산 등 지역에 머물러 주둔해가지고 호남으로 흩어진 적들의 세력을 방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급히 보고합니다.

제(題): 등보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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