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소위(少尉) 사이토(齋藤溫)가 말하기를, “제가 홍주(洪州) · 태안(泰安) · 서산(瑞山) 등지에서 동비(東匪)를 토벌하여 지금은 흩어지고 도망쳐 남은 자가 없는데, 이두황(李斗璜)이 조선의 병정을 이끌고 와서 백성의 재산을 약탈한다고 원성이 잇달고 있습니다. 귀국의 병정이 하는 행위를 누구도 금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보면 백성을 해치는 것을 즉각 금지하고, 어쩔 수 없으면 죽여도 무방합니다. 일이 지나간 뒤에는 호소해도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해미(海美) 경내에서는 민심을 위로하기 위해 집마다 조사해보니, 동도에 들어가지 않은 양민 집에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집집마다 약탈하여 소 50여 마리를 빼앗아 갔습니다. 집안의 집물(什物) 중에 솥은 무거워서 빼앗아가지 못하였으나, 그 밖에 옷 · 돈 · 곡식 · 그릇과 철물(鐵物)이라고 하는 것은 남김없이 약탈하여 빼앗은 소에 싣고 갔습니다. 불쌍한 이곳 양민(良民)들은 돈과 곡식을 동도에게 빼앗기고 약간 남은 것도 경귀(京貴, 경병)에게 모조리 빼앗겨서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날씨는 춥고 굶주려 죽으니 매우 가련합니다. 그 지역 백성들이 울면서 호소한 곳은 일본군 진영뿐만이 아니며, 홍주목사(洪州牧使)에게도 하였습니다. 보기에 매우 딱합니다. 병사라고 이름붙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자는 병사가 아닙니다. 이런 뜻을 우리 일본 공사에게 말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알립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