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께 아뢰기를,
“방금 선봉장 이규태의 첩보를 보니 ‘11월 5일 교도소(敎導所) 영관(領官) 이진호(李軫鎬)가 올린 첩정(牒呈) 내용에「대관(隊官) 이겸제(李謙濟)가 병정 1개 부대를 이끌고 일본병사와 함께 청산(靑山)에서 다시 옥천(沃川)·금산(錦山)·용담(龍潭)·진안(鎭安)·고산(高山) 지역을 향해 가다가, 수만 명의 비류(匪類)와 맞닥뜨렸는데, 문득 살해한 자가 넉넉히 300명이나 됩니다. 생포한 자도 50놈이 되는데, 그 중에서 수괴(首魁) 서도필(徐道弼) 등 9놈은 그대로 총으로 쏘아 죽이고, 접사(接司) 이만학(李晩學) 등 3놈은 본진(本陣)에 수감하였으며, 그 나머지 38놈은 모두 협박에 의해서 동도에 가입하였으므로 효유하여 귀화(歸化)시켰습니다. 빼앗은 군물(軍物)은 읍이 대부분 텅 0비어 있어서 후환(後患)이 있을까 두려우므로 총(銃)·창(槍)·화약(火藥)·탄환(彈丸) 등의 물건들을 모두 부수고 용해하였습니다.」라는 사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아룁니다.”
라고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