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게 아뢰기를, “선봉장 이규태(李圭泰)의 보고를 즉시 살펴보니, 교도소(敎導所) 영관(領官) 이진호(李軫鎬)의 보고 내용에, ‘지난 11월 25일에 병정 한 부대와 일본군 한 부대를 거느리고 금구(金溝), 원평(院坪)으로 나아가다가 수만 명의 적들과 우연히 맞닥쳐서 서로 살육전을 벌였습니다. 대관 최영학(崔永學)이 칼을 빼어들고 병사들을 재촉하여 산으로 올라가 앞장서서 37명의 적들을 죽였습니다. 나머지 무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으며달아나 목숨을 부지하였고, 회룡총 10자루, 조총 60자루, 병연환 7석(石), 화약 다섯 상자, 포 10좌, 도창 2백 자루, 쌀 5백석, 돈 3천 냥, 나무 10동무명[木] 10통, 소 2마리, 말 11필, 연우피 10장, 호피 1령, 문서 두 그릇광주리 등을 모두 일본군 부대에 주었습니다. 우리 병사와 일본 병사들은 한 사람도 상처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미 날이 저물어 군사를 철수하여 거기에서 머물며 밤을 지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주(羅州) 공형(公兄)의 공문 내용에, ‘적도들이 성을 포위하고 있어서 그 형세가가 매우 위급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28일에 선봉이 통위영(統衛營)의 병사 2개 소대와 일본군 1백여 명을 거느리고 구원하러 갔다고 하기에 이와 같이 아룁니다.”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답하길, “알았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