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관 전동석(田東錫)이 보고하는 일입니다. 지난 달 30일에 고산(高山)에 도착하여 비류의 접주(接主) 최성호(崔成浩)를 효수하여 사람들을 경계하였습니다. 다음날 진안(鎭安)에 도착하여 비류 수천 명과 단병(短兵)으로 접전을 벌여 접주 선윤석(宣允錫)과 접사(接司) 유상원(劉尙源), 교장(敎長) 고윤흥(高允興) 등 30여명을 베어 죽였으며, 나머지 무리들은 사방으로 달아났습니다. 획득한 물건은 조총 21자루, 양총(洋銃) 1자루, 탄환 20여 개, 병정 복색의 친자(親字) 혁대 각 몇 건, 장창(長槍) 15간(桿), 환도(環刀) 15자루, 화약 80여 근, 철환 5만여 개, 화승(火繩) 천여 타(朶), 위조 목인(木印) 5개, 도서(圖署) 2개이며, 이 중 위조인은 앞서 단단히 싸서 올려 보냈습니다. 적적도 놈들이 쌓아놓은 미(米) 70여 섬 중 30여 섬은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40여 섬은 진안의 이방(吏房)에게 지급하여 고을의 폐단을 바로잡으라고 하였습니다. 연산(連山)에서 획득한 화약, 총알, 총, 칼 등과 진안에서 획득한 군수물자들은 모두 소모군의 진중(陣中)으로 옮겨서 사용하게 하였으니, 일본군과 물건을 나누라고 내린 전령은 환수하도록 하십시오. 소모관은 남원을 향하여 출발합니다.
제(題): 처음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참으로 가상하다. 군사물자를 이미 마련하였다니 또한 다행한 일이다. 군행을 갈군사가 나아갈 때 백성들을 편안히 머물게 살게 하는 일이 오늘날 제일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