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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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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목사 이승우가 베껴서 보고함

홍주목사(洪州牧使) 이승우(李勝宇)가 베껴서 보고하는 일입니다. 이 달 13일 술시(戌時, 오후 7~9시) 쯤에 도착한 남포(藍浦)의 현지 춝신 토중군(土中軍) 이종태(李鍾泰)의 보고 내용에, “여러 고을의 동도가 호남의 비류와 결탁하여 수천 명이 지금 12일에 한산에 쳐들어와 인가를 불태우고 감옥에 갇힌 동도를 내보내고 멀리 달아날 염려가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14일에 신의 병영에 있는 군사를 동원하여 대동한 군관 정기황(鄭基璜)과 이석범(李錫範)으로 하여금 이들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게 하였으며, 또한 수영(水營), 보령(保寧), 남포(藍浦), 비인(庇仁) 등의 병사를 계속 동원하여 모두 5천여 명이 17일에 서천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멀리 바라다보니, 적도들이 10리쯤 떨어진 한산(韓山)의 금당산(金塘山) 위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적의 세력을 헤아려 보니 위쪽으로는 공격할 수가 없어서 산에서 내려오도록 꾀어내기 위하여 19일에 금당산 아래로 바짝 진격하여 적과 접전을 벌여 수십 명을 총을 쏘아 죽이고는 돌아서서 거짓으로 패하여 물러났습니다. 적이 과연 산에서 내려와 삼수동(三水洞)에 진을 쳤기 때문에 전투를 벌여 승리를 정할 수 있으므로 홍산(鴻山)에 머물고 있는 서산군수(瑞山郡守) 성하영(成夏永)과 비밀히 약속을 하여 장차 그와 함께 안팎에서 협공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서천의 아전들이 아직 다 귀화하지 않고 군수를 거짓으로 꾀어 접경지역까지 가로막고 완고하게 회군할 것을 요구하면서 “적들이 한산에 있으니 반드시 서천에서 행진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적이 비록 한산의 경계에 있지만 서천읍에서 가까운 데도 그들이 말하는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마침내는 성 안에 있는 이른바 수백 명의 방수군(防守軍)이방수군(防守軍) 수백 병이 합세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도리어 다른 문으로 나가서 안산(案山, 남쪽 산)에 진을 치고 있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군사들이 의심을 하고 공격을 하려고 하자 서산군수가 다른 뜻이 없다고 힘써 말하고는 즉시 밖에서 호응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군사들에게 먹을 것을 보냈지만 겨우 촌민들이 마련한 대광주리의 밥을 먹었을 뿐이어서 노숙을 하며 고생을 한 병졸들은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하리(下吏) 나운경(羅雲景)과 유한표(劉漢杓)가 즉시 지목하여 떠들어대기를, “비괴(匪魁)가 겉으로는 귀화한다고 하고는 속으로는 흉악한 속셈을 갖고 마침내는 군량을 적진으로 실어 나르기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며, 또 한 가지 말을 꺼내어 군사를 선동하기를,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경군(京軍)은 완주의 비류(完匪) 전봉준이 경병의 복색으로 분장시킨 것으로 (우리를) 습격해 올 예정이다.”라고 하여 사람들이 모두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각 진영에서 모인 장병들이 흩어질 염려가 있었습니다. 말의 뿌리를 수소문하여 보니 또한 서산군의 아전에게서 나왔지만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나(羅)가 놈의 입이었습니다. 군정(軍情)은 안정시키기가 어렵고 또한 어느 때 뜻밖의 위기가 놓여 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인(庇仁)으로 부대를 옮기기 전에 서산의 군사가 한산을 경유하여 온 것을 탐색하여 호응하려고 하였더니 곧바로 서천의 당산(堂山)으로 진군해 왔습니다. 적도는 이미 서천성에 들어가 민가를 불태우고 관고(官庫)에 있는 화약을 다투어 나누어 관아에 불을 질렀습니다. 적들도 불에 타 죽은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노략질을 하고 나가다가 갑자기 길산교(吉山橋)에서 서산의 군사와 맞닥뜨려 한 부대를 수없이 죽였고, 적의 무리도 총을 맞아 죽은 자가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나머지 무리들은 무너져 흩어졌는데 각 영읍(營邑)의 군사들이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생포한 수가 30명입니다. 26일에 와서야 비로소 회군하였습니다. 또한 각읍의 유회소에서 잡아온 나머지 무리들이 13놈이었기 때문에 취조를 한 뒤에 참작하여 처리할 계획입니다. 이번에 승리를 거둔 것은 전적으로 서산의 군사들이 때맞추어 지원하러 달려와 주었기 때문이니 왕의 교화가 미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서천이라고 하는 읍은 호남과는 한 가닥 강물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서 비류들이 가득한 것이 (다른) 여러 읍들보다도 더욱 심하여, 여전히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감히 겉으로는 드러내서 거부하지 못할 뿐이어서 이처럼 속으로는 다른 의도를 지니고 속이며 숨기고 있습니다. 새로 부임하는 관리가 흉악한 술책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엄중하게 조사하여 자백을 받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압송해 온 아전과 향임들로부터 공초를 받아내려고 합니다. 서천군수 유기남(柳冀南)은 부임한 이후부터 비도들이 경계를 침범한 일과 관군이 성에 들어간 일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한 번도 보고를 한 일이 없으며, 회군한 지 이틀째 되는 날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보고서를 한 장 바쳤을 뿐입니다. 그 보낸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모두 날조된 것들입니다. 관군이 돌아가 군율을 어기고 변란을 일으켜 나랏일을 그르쳤다고 했는가 하면, 심지어는 홍주(洪州)의 군사들은 만 번을 죽여도 오히려 가볍다는 따위의 말이 있으니 해괴하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음이 없으며, 참으로 난잡하여 일일이 들어 말씀을 올릴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무릇 이 보고도 또한 아전들 중에서 몰래 적들과 내응한 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니 이제 일이 진정된 뒤에 벗어날 계책을 실행하고자 한다면 사체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이같은 망령된 행위가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장리배(將吏輩)들의 시기와 의심에 불과한 것이니, 그 더러운 병은 얽히고 엉켜서 뻗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신의 병영에서 규합한 무리들은 모두가 무예를 익히지 않고 훈련을 하지 않은훈련을 하지 않고 무예를 익히지 않은 장병들입니다. 그동안에 공격과 수비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요행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스스로 통제의 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번에 행군할 때에 실수가 있었는데도 스스로 반성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병사를 내어 적을 토벌하는 조치를 가리켜서, 변란을 일으켜 나라를 그릇되게 하였으니 만 번 죽어도 가볍다고 곧장 몰아붙이는 식으로 보고를 하였으니 어찌 그처럼 사리에 어긋날 수 있습니까? 신이 생각하건대 만일 군(軍)에 기강과 기율과 위엄이 있고 또 긍지가 있다고 한다면, 다른 능멸과 핍박을 받아 체통이 손상된다고 한들 이처럼 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도 신의 죄이며, 둘도 신의 죄이니, 황공하여 처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천군이 속으로 복종하지 않고 교화되지 않았으며, 서천군을 지키는 병졸들이 어리석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 후환이 될 것 같아서 참으로 번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급히 아룁니다.

제(題): 보고를 들으니 참으로 놀랍고 해괴한 일이다. 이 일은 철저하고 엄중하게 조사하지 않을 수 없다. 참작하여 처리한 뒤에 일의 형편을 소상하게 급히 보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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