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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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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부사 이회원이 보고함

강릉부사(江陵府使) 이회원(李會源)이 보고하는 일입니다. 지난 달 29일에 도착한 전령의 내용에, “소모사로 계하(啓下)하였으니 직임을 살피라”고 하였습니다. 본 관부의 영서(嶺西) 6면은 (읍과의 거리가) 수백 리나 떨어져 있으며,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패악한 부류들이 동도와 결탁하여 창고에 불을 지르고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달 22일에 군정(軍丁)을 동원하여 본부의 중군(中軍) 출신(出身) 이진석(李震錫)과 전 감찰 이영찬(李永燦), 사인(士人) 박동의(朴東儀)에게 이들을 거느리고 봉평면(蓬坪面)의 비도들을 토벌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면에 사는 강위서(姜渭瑞)가 비도의 소요 행위에 격분하고 백성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동네의 군사로 하여금 비괴 윤태열(尹泰烈), 정창호(丁昌浩) 등 13놈을 잡아서 바쳤습니다. 한편으로는 총살하고 한편으로는 효수를 한 뒤에 강위서를 대장(隊長)으로 차출하여 군정(軍丁)을 거느리고 비도를 토벌하고 각별히 방어하도록 더욱 엄중하게 타일렀습니다. 박동의를 소모종사관으로 차출하고 그 다음 날에 이진석은 정선군(旌善郡) 여량(餘粮)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서 비도와 접전을 벌여 접사(接司) 이중집(李仲集) 등 14놈을 쏘아 죽였습니다. 이 달 초 6일에 올린 강위서의 보고 내용에, “동도의 거괴(巨魁) 차기석(車箕錫)이 무리 천여 명을 모아 봉평(蓬坪) 내면(內面)과 영서(嶺西)의 여러 읍에 출몰하여 사람들을 살해하고 창고와 민가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박동의에게 병사들을 거느리고 바로 내면으로 보내게 하고, 이어서 다시 양양(襄陽)의 관부에 관문을 보내어 병정을 모집하였습니다. 양양 관아의 사인(士人) 이석범(李錫範)은 진신(縉紳)의 후예로서 분연히 이미 의병을 모집하여 이끌고 경내의 비도를 토벌하였으며, 소모사의 명령을 듣고 바로 같은 마을의 사인인 최주하(崔舟河), 김준수(金儁秀), 장혁주(張赫周) 등과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와서 대기하였습니다. 이 달 11일에 강위서와 홍천(洪川)의 허경(許坰)이 합세하여 바로 토벌을 해서 자운포(自雲包)의자운포(自雲包)를 토벌해서 접주 위승국(魏承國)과 접사(接司) 심성숙(沈成淑) 등 17놈을 총을 쏘아 죽였습니다. 그 다음 날에 박동의가 이석범과 군사를 합세하여 바로 원당리(元堂里)로 진격하여 차기석을 토벌할 때에 성찰(省察) 오덕현(吳德玄) 등 3놈을 먼저 총을 쏘아 죽였고, 승세를 타서 차기석을 사로잡고 청두리(靑頭里)로 진격하여 홍천의 비괴인 권성오(權成五) 등 12놈을 총을 쏘아 죽였습니다. 이석범의 동생인 국범(國範)은 병사를 이끌고 신배령(新排嶺)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이석범의 부하부도(副徒)인 김익제(金翼濟)는 병사를 이끌고 응봉령(鷹峰嶺)으로 바로 나아가 삼거리에서세갈레 길로 협공하여 접주 김치실(金致實) 등 11놈을 총을 쏘아 죽였으며, 접사 박학조(朴學祚)를 사로잡았습니다. 또 손응선(孫應先) 등 60여 명을 사로잡았는데 잘 타일러서 귀화시켰습니다. 강위서는 흥정(興亭) 3리로 방향을 바꿔 임정호(林正浩) 등 38놈을 총을 쏘아 죽였고, 나머지 무리 백여 명은 잘 타일러서 귀화시켰습니다. 홍천에서는 지평현감(砥平縣監)이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였고, 횡성에서는 해당 현감이 소모관 정준시(鄭駿時)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였으며, 평창(平昌)과 영월(寧越)에서는 일본군이 먼저 토벌을 하였습니다. 다른 군대가 이미 지나간 곳은 나아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각 군대는 그대로 회군하였습니다.돌아왔습니다. 사로잡은 거괴 차기석과 박학조 등 두 놈은 이 달 22일에 교장(敎場, 강릉 관아에 있음)에서 자리를 만들어 머리를 베어효수하여 사람들을 경계한 뒤에 그 머리는 일꾼을역자(驛子)를 정해 본도의 감영에 보냈습니다. 추운 겨울에 군정(軍情)이 걱정스럽기 때문에 차례대로 물러나 돌아가게 하고 여러 차례 비도의 약탈을 겪은 백성들은 잘 타일러서 불러 모아 각각 머물러 살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제(題): 도착했다. 이제는 이미 조금 진정되었으니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게 하는 방법을 더욱 강구하여 보살피도록 하고, 나머지 비도들을 수색하여 붙잡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하라.

주석
계하(啓下) 임금의 재가를 받는 것을 말한다. 계품한 문서에 재가의 표시로 계자인(啓字印)을 찍어 내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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