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병사(忠淸兵使) 이장회(李長會)가 보고하는 일입니다. 이 달 9일 유시(酉時, 오후 5~7시) 쯤에 도착한 청산(靑山) 공형(公兄)의 보고 내용에, “호남의 비류 수만 명이 무주(茂朱)에서 (출발하여) 7일에 옥천(沃川)에 도착하여 영동(永同)으로 들어가려 한다고 합니다. 만일 영동에 들어가게 된다면 반드시 본 읍으로 향하게 될 것이니 매우 놀랍고 두려운 일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길을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문의(文義)로 향하고, 또 하나는 보은(報恩)으로 향하여 가다가 돌려서 영동에 도착하려고 합니다. 10일 묘시(卯時, 오전 5~7시) 쯤에 받은 보은군수의 급한 기별에, “남쪽 비류(南匪) 수만 명이 8일에 본 읍 원암리(元巖里)에 와서 유숙하고 있으니 빨리 구원하여 달라.”고 하여, 즉시 영관(領官) 이용정(李容正)이 있는 곳에 전령을 보내 그로 하여금 함께 보은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들으니, 청산과 회덕의 동도들이 관장(官長)의 비호를 믿고서는 예전의 습성이 재발하여 밖으로는 남비를 부르고, 안으로는 사통(私通)을 일삼는다고 합니다. 그들을 토벌하는 일은 잠시라도 늦출 수 없습니다. 따라서 창의인(倡義人) 박정빈(朴正彬), 홍영훈(洪永勳) 등과 함께 기복병(奇伏兵)을 나누어 설치하여 서로 응원하려고 합니다.
제(題): 두 읍의 거동이 참으로 해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