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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일러두기

연안부사 이계하가 보고함

연안부사(延安府使) 이계하(李啓夏)가 보고하는 일입니다. 방금 도착한 양호도순무사의 전령의 내용에, “근래 비류들의 정황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으며, 해당 읍의 비도들은 지금도 창궐하고 있다고 들었다. 따라서 우선 전령을 내리니 도착하는 즉시 각 면 각 동에 각별히 신칙하여 그들로 하여금 오가작통(五家作統)을 하여 서로 두루 잘 살피고 치밀하게 하여 거괴를 수색하여 체포하고, 즉시 효수하여 사람들을 경계하고 백성들을 보살펴서 안정시켜라. 대군(大軍)이 장차 진군하려 함에 상민(商民)들이 향도(嚮導)를 자원하고 있다니 그 정성이 가상하다. 해당 읍에서 보부상부보상의 두목에 각별히 신칙하여 그들로 하여금 조심스럽게 거행하도록 하고 그 일의 형편을 급히 보고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부사가 부임 초부터 백성들을 잘 타이르고 위험한 말로 두렵게 하여, (비도는) 목을 움츠리고 자취를 거두어서 거의 사그라졌습니다. 이 달 초 7일에 평산(平山)에서 5, 6백 명의 비도가 갑자기 본부(本府)로 쳐들어 와서 몰래 숨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강제로 몰고 갔으며, 문서와 장부를 불태우고 무기를 빼앗고 돈과 곡식 전곡(錢穀)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따라서 계책을 써서 명령을 내리길, “경군(京軍)과 일본군이 행진하여 경계를 압박하려고 하였으나, 옥석(玉石)이 모두 불에 탈 염려가 있기 때문에 동도(東徒)에 들어가지 않은 자들은 각각 성명을 쓰고 관인을 찍어 증거로 삼는 게 좋다.”라고 하였습니다. 며칠 안으로 도장을 찍은 것이 수만여 장이 되었으며, 마을마다 동도배들이 군기를 수납하고거두어 바치고 목숨을 구걸하였습니다. 귀화하는 자들에게 모두 이를 지급허급(許給)하였더니 경내의 모든 동도들이 귀화하게 되었으며, 혹은 이웃 읍에 사는 백성들도 이에 의지하여 교화하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이 무리들은 모이면 난민(亂民)이 되고 흩어지면 양민(良民)이 되니, 지금으로서는 잘 어루만지고 타일러서 안정을 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따라서 면전에서 별군관을 신칙하여 그로 하여금 다른 곳으로 순행하게 하고 이곳 경내는 다만 앞으로의 일만을 보겠다는 뜻으로 약속하였습니다. 본부는 해평(海平)과 접경지역에 있으므로 엄중히 경계하며 방어하지 않을 수 없으나 군수물자를 댈 방안이 전혀 없으니 어떤 경사(京司)에서 상납한하기로 된 것을 우선 얻어서 사용하는 것이 어떨지 처분을 기다려 거행하겠습니다. 오가작통은 전령이 있기 전에 이미 신칙하였으며, 무기는 획득한 숫자가 잃어버린 것보다 조금 많습니다. 이후의 일의 형편에 대해서는 다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제(題): 비도들이 난리를 일으켰다니 참으로 놀랍고 한탄스러운 일이다. 연안의 온 경내가 귀화하였다니 어떤 덕정을 펼쳐서인지 참으로 가상하고 감탄할만한 일이다. 군수물자는 이미 군사를 사용하는 때가 아닌데 어찌 막아 지키기 위한 공납(公納)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 읍에서 편의대로 조처하도록 할 것이며, 오가작통은 참된 마음[實心]을 지니고 실속 있는 참된 정사[實政]를 편칠 연후라야 두드러진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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