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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일러두기

12월 17일

소모관 임두학이 보고함

소모관 임두학(林斗鶴)이 보고하는 일입니다. 모집한 읍의 장정과 여러 읍의 장교와 아전 및 사민(士民)들 중에서 의기가 있는 자 수천여 명이 밤낮으로 훈련을 하면서 비류를 완전히 토벌하려고 하는 때에 경군(京軍)과 일본군의 대대(大隊)가 전봉준 및 김개남 등과 전투를 벌였다가 쉬었다가 하면서 장성(長城)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소(本所)에서 각처에 지시하여 비도를 막게 하였는데 토벌 시 체포된 수백 명 중에서 능주(綾州)에 사는 양해일(梁海一)은 이른바 접주 중에서도 거괴(巨魁)로, 지난번에 남원의 수령이 살해될 때 거만하게 전주의 북루에 앉아 있으면서 방자하게 흉악한 짓을 한 자입니다. 고부(古阜)에 사는 전봉준(全琫準)은 제일 먼저 선동한 거괴로, 사람들을 속여 자신의 병사로 만들어 관군에 저항하고 고을을 부수며 마을을 약탈하여 충청도와 전라도의 천리 사이에 오래도록 인가에 연기가 끊어진 것도 모두 이놈이 한 짓입니다. 연이어 60여 성을 함락하고 수만 명의 백성들을 도륙하였으며, 서너 고을의 수령이 살해를 당한 것도 이놈이 한 짓입니다. 섬멸하고 죽이는데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될 놈입됩니다. 이 달 초 2일 밤에 저놈이 김개남과 서로 만나려고 순창의 피로리를 몰래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마을의 선비인 한신현(韓信賢)이 김영철(金永徹), 정창욱(丁昌昱) 등과 함께이 몰래 민병(民兵)들을 이끌고 여러 가지로 주선하여 그를 따르는 세 놈과 함께 동시에 생포하였으니, 어찌 성덕(聖德)이 미친 바가 아니겠으며, 세 명의 백성이 몸을 던져 의병을 일으킨 것은 어찌 가상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본소(本所)부터 1,000냥을 상으로 지급하였으며, 위 죄인 전봉준은 구격(具格)하여 본도의 순영(巡營, 전라감영)으로 압송하려고 하였는데, 일본군 대대(大隊)가 와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남하한남쪽으로 온 것은 오로지 이 한 놈을 잡기 위해서였으니 함께 간수(看守)하면서 서울로 압송하여 추국하는 게 마땅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봉준을 일본군 부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위 세 사람은 법전(法典)에 따라 포상할 일입니다.

제(題): 세 사람에 대해서는 임금에게 아뢰었으니 공이 으뜸인 자는 마땅히 특별한 포상이 있을 것이다. 계속 격려하여 더욱 승전의 소식을 알리도록 하라.

주석
구격(具格) 수갑을 지르고 차꼬를 채우고 칼을 씌우는 것을 말한다.
일본군 대대(大隊) 당시 일본군 지휘관은 미나미(南小四郞) 소좌였다. 그가 전봉준을 나주 감옥에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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