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감사 박제순이 보고하는 일입니다. 주둔 중인 영관(領官) 구상조(具相祖)의 첩정 내용에, “연산(連山)에 있다가 출진한 대관(隊官) 김명환(金命煥)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그믐날 경천(敬川)에서 연산에 도착하였는데 겸관(兼官) 진잠현감(鎭岑縣監)이 와서 접대하다가 근래 마을 사람들이 비괴를 붙잡아 순영(巡營)으로 압송할 때 10여 명의 비류가관동(官洞)의 비류 10여 명이 관노를 구타하고 죄인을 빼앗아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초 2일에 그 마을을 포위하고 10여 놈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해당 마을 사람들이 잡은 거괴 정판손(鄭判孫)은 총살되었고, 그 뒤 다른 놈들은 풀려났습니다. 초 3일에 연산 두마장(豆磨場)으로 부대를 옮겼으며, 또한 노성(魯城)의 대명접주(大明接主) 박만은(朴萬殷)과, 진잠에 사는 이른바 전봉준의 수하인 오영도순찰(五營都巡察) 이현우(李鉉右), 도곡접주(道谷接主) 김현귀(金鉉龜) 등 세 놈을 붙잡아 즉시 총살하였으며, 그 나머지 14명열네 놈은 잘 타일러서 풀어주었습니다. 초 5일에 참모관 이윤철(李潤徹), 향도관(嚮導官) 장윤국(張允國) 등과 함께 순찰하다가 고산에 이르러 10여명십여 놈을 붙잡아 심문하였더니 그들의 우두머리는 이미 도망가고 (나머지는) 모두 위협에 못 이겨 따라갔다랐다가 동학을 배반한 자들이었으므로 잘 타일러서 풀어주었습니다. 초 6일에 돌아오는 길에 전봉준의 수하인 운량관(運粮官)과 우마감관(牛馬監官)인 소진갑(蘇眞甲), 전관지(全官之), 김만업(金萬業) 등 세 놈을 붙잡아서 문적(文蹟)을 조사하여 보니 계획한 것이 대단히 흉악하여 즉시 총살하였습니다. 아울러 오영(五營) 도순찰(都巡察) 수기(手旗)와 조사한 문적을 보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함께 단단히 밀봉하여 올려 보냅니다.
제(題):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