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감병사 이장회가 보고하는 일입니다. 호남의 비류들이 무리를 모아 올라온다고 합니다. 본영(本營)에서 군사를 일으킨 사유는 이미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12일에 본영을 출발한 영관(領官) 이용정(李容正)의 보고 내용에, “이 달 11일 묘시(卯時, 오전 5~7시) 쯤에 보은에서 길을 나누어 청산(靑山)에서 모였을 때 경리청(經理廳)의 군사 60여 명과 의사(義士) 박정빈(朴正彬), 육상필(陸相弼) 등이 의병으로 나선 포사(砲士) 30여명을 이끌고 도착하였기 때문에 그곳 현에서 함께 주둔하고 적의 정세를 탐문하였더니 저 비도들 7, 8만 명이 영동(永同)의 용산 장터에 모여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12일 이른 아침에 본진(本陣)에게도 기별이 와서 토벌하러 나아가서 크게 전투를 벌였지만 종일토록 적의 세력이 매우 커서 적과 맞서 싸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급히 원군을 보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병사를 화급히 보낼 무렵인 13일 미시(未時, 오후 1~3시) 쯤에 양영(兩營)의 군사와 의병들이 모두 패배하여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군사력의) 강약(强弱)이 같지 않고, 탄환이 다 떨어져서 다시 접전을 벌일 수가 없어서 물러나 돌아왔다고 합니다. 저 비도 가운데 사상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기는 어려우며, (아군 측은) 참모관 이윤철과 경병 2명, 본영의 병사 1명이 모두 살해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고 한탄스러운 일입니다. 양호(兩湖)의 비류와 거괴가 모두 그 안에 있다고 하니, 형세로 보아 머지않아 토벌을 해야 하지만, 탄환이 이미 다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길을 재촉하여 병정을 급히 보내니, 인천항에서 신속히 주선하여 내려 보내주시고, 그렇지 못할 경우 충주 가흥진(可興陣)에서 주선하여 처분해 주십시오. 어떻게 하여야 할지 알지 못하겠으니 울적함(燥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내려 준 제지(題旨)의 내용에 홍주목(洪州牧)에서 3만개를 수송하라고 하셨으므로 사람에게 맡겨 가서 정탐하게살펴보게 하였지만 도무지 탄환이 내려올 것이 없어서 더욱 의아스럽고 울적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제(題): 도착했다. 아군과 일본군이 내일 속속 출발할 예정이며, 탄환은 이제 많은 수량을 가지고 가니 각 부대는 단속을 하고 대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