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병사 이장회(李長會)가 보고하는 일입니다. 보은(報恩) 땅에 모인 남쪽에서 온 비도(南匪)를 토벌하기 위하여 다시 군사를 파견하였습니다. 출진하였다가 이 달 19일에 도착한 순무영 별군관 이태래(李泰來)의 보고 내용에, “이 달 17일에 영관(領官) 이용정(李容正), 대관(隊官) 김영진(金榮辰), 창의인(倡義人) 박정빈(朴正彬), 참모관 홍영훈(洪永勳) 등을 이끌고 군사를 좌우로 나누어 이용정을 앞에 내세워 먼저 그곳 군의 대암점(大巖店)에 다다랐습니다. 수백 명의 적도들이 집결해 있었기 때문에 바로 공격하여 총을 쏘아 죽인 자들이 24명이었으며 그 나머지 무리는 종곡(鍾谷, 북실)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 부대를 주둔시켰습니다. 18일에 종곡에 도착하자 상주의 군사 110명과 일본 군사 40명이 율현(栗峴)에서 먼저 와서 접전을 벌이다가 싸움터 한가운데에 포위되어 매우 위급하였기 때문에 먼저 대포를 쏘고 좌우에서 협공하자 적도는 저항하지를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힘을 합쳐 수십 리를 쫓아가 총을 쏘아죽이거나 생포한 자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크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적도는 스스로 서로 밟혀서 죽은 시체들이 들에 가득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남악리(南岳里)에 머물러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적도는 밤을 틈타 멀리 달아났으며, 거괴는 모두 속리산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다음날 새벽에 용화(龍華)와 속리 등지로 가려고 하였으나 상주의 군사와 일본 군사가 본주(本州)가 비어 있다는 이유로 상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저들 수만 명의 거대한 무리를 이처럼 수백 명의 잔약한 병졸을 데리고 이같은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참으로 매우 다행한 일입니다. 거괴 최시형(崔時亨)과 여러 적도들은 이제 여러 가지로 방법을 짜내어 토벌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큰 덩어리를 부수었으니 중앙과 지방에서 구원하는 일은 잠시 중지하여 주십시오.
제(題): 도착했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하여 용맹을 떨치며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으니 더욱 가상하고 기쁜 일이다. 거괴를 쫓아 붙잡는 방안은 군대의 위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방책을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