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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일러두기

참모사 이명상이 보고함

예산(禮山) 신례원(新禮院)의 전투
덕산사인(德山士人) 신태봉(申泰鳳)
스물이 안된 젊은 나이에 힘껏 적과 싸웠으나 목숨을 잃었다. 그 모친이 아들을 따라서 죽자 흉적들이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었다.
예산사인(禮山士人) 홍경후(洪敬厚)
동비(東匪)들이 일어나자 의를 떨치고 일어나 군진에 나아가 포군(砲軍)에 자원하여 힘껏 싸웠으나 죽임을 당하였다.
홍주사인(洪州士人) 유기석(劉基錫)
유군(儒軍) 이종국(李鍾國)
이상은 유회(儒會)에서 앞장서 창의하여 힘껏 동학을 물리쳤으나 적에게 잡혔으며, 적들을 꾸짖다가 목숨을 잃었다.
재생(齋生) 방세영(方世永)
방석규(方錫珪)
이만오(李萬五)
오경근(吳景根)
최민로(崔敏老)
최학신(崔學信)
이상은 비도들이 성을 침범하였을 때 몸으로 성전(聖殿)을 지키다가 재복(齋服)을 입고 붙잡혀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진잠관노(鎭岑官奴) 정길(正吉)
빈손으로 온 힘을 다해 싸웠으나 끝내 부상을 입었다.
부여신촌(扶餘新村)의 고(故) 교관(敎官) 홍승렬(洪承烈)의 질부(侄婦)
18세에 일찍 과부가 되었는데, 동도(東徒)가 겁탈하려 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그날밤 곧장 방에 들어가 마침내 조용히 자결하였다.
공주(公州) 방산(芳山) 원용중(元用重)의 자부(子婦) 정씨(鄭氏)
길에서 우연히 비류의 경보를 만났는데 끝내 가마를 붙잡혀 피가 뚝뚝 떨어져 흥건히 적시자 가마 안에서 자결하였다.
홍주(洪州) 매평송씨(梅坪宋氏)의 며느리 정씨(鄭氏)
강촌사인(江村士人) 유진뢰(兪鎭雷)의 처 이씨(李氏)
이상은 어려서 과부가 되었으나 늙은 시어머니 때문에 차마 (자결할) 결심을 하지 못하다가 동비(東匪)의 화가 일어나자 조용히 의리의 길로 나아갔다.(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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