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군(中軍) 박항래(朴恒來)는 ‘속에 품은 뜻은 알겠으나 나라를 맡길 만한 장수라고 사료되지 않음.[素知蘊抱 不料干城]’이니, 상(上)입니다.
경주 부윤(慶州府尹) 남학희(南學熙)는 ‘빈궁한 백성부터 먼저 보살피고 자기 것을 덜어내서 베푼 혜택이 이미 많음.[先恤荒民 損惠已 多]’이니, 상입니다.
안동 부사(安東府使) 이희원(李喜元)은 ‘피폐한 고을에 부임하여 옛 사람의 정사를 시행함[到據弊邑 行古人政]’이니, 상입니다.
창원 부사(昌原府使) 이종서(李鍾緖)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됩니다.
상주 목사(尙州牧使) 이만윤(李晩胤)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됩니다.
진주 목사(晉州牧使) 허철(許)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성주 목사(星州牧使) 조익현(趙翼顯)은 ‘참혹하게 잿더미가 된 폐허에서 손이 가는 대로 힘껏 구휼(救恤)함.[慘目燼墟 隨手劬恤]’이니, 상입니다.
대구 판관(大丘判官) 지석영(池錫永)은 ‘정성과 신의로 교류하고 위엄과 용맹함으로 단속함.[交以誠信 戢之威猛]이니, 상입니다.
울산 부사(蔚山府使) 안종덕(安鍾悳)은 ‘누차 영읍(嶺邑)을 맡아 부임한 곳마다 훌륭한 수완을 발휘함.[屢典嶺邑 到處良手]’이니, 상입니다.
김해 부사(金海府使)는 아직 임명되지 않았습니다.
영해 부사(寧海府使) 신태휴(申泰休)는 ‘송사(訟事)를 판결함이 치밀하고 자상하며 일을 처리함이 엄혹함.[聽理綜詳 處事嚴酷]’이니, 상입니다.
밀양 부사(密陽府使) 정동기(鄭東箕)는 ‘다스림은 노련하나 혼모(昏耗)함이 자못 결점임[治雖老成 頗欠昏耗]’이니, 중(中)입니다.
청송 부사(靑松府使) 신관조(申觀朝)는 ‘청렴결백하고 지조가 전아(典雅)하여 문학(文學)을 중요시하지 않음.[廉潔雅操 文學餘事]’이니, 상입니다.
동래 부사(東萊府使) 정인학(鄭寅學)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선산 부사(善山府使) 윤우식(尹雨植)은 ‘사람됨이 본래 옥처럼 훌륭하고 정사도 매우 청백함.[人本如玉 政又至淸]’이니, 상입니다.
인동 부사(仁同府使) 조응현(趙應顯)은 ‘사졸(士卒)보다 앞장서서 비류 소탕에 힘을 아끼지 않음.[身先士卒 剿不遺力]’이니, 상입니다.
칠곡 부사(漆谷府使) 남궁억(南宮檍)은 ‘촌락을 순찰하여 백성의 고충을 살피고 장정(壯丁)을 모집하여 비류를 소탕함.[巡村察隱 募丁剿匪]’이니, 상입니다.
순흥 부사(順興府使) 이관식(李寬植)은 ‘비방(誹謗)이 사실과 어긋난 것도 있으나 진작하여 면려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움.[謗或爽實 難望 振勵]’이니, 하(下)입니다.
하동 부사(河東府使) 홍택후(洪澤厚)는 ‘눈물로 백성을 위무하고 기운을 떨쳐 군사를 순시함.[灑涕撫民 勵氣巡師]’이니, 상입니다.
거제 부사(巨濟府使) 임창호(任昶鎬)는 ‘초임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피폐해진 곳을 소생시킴.[莫曰初手 弊局將蘇]’이니, 상입니다.
거창 부사(居昌府使) 정관섭(丁觀燮)은 ‘이웃 고을에서 이기고 돌아와 도적떼가 일체 사라졌음.[振旅隣省 萑澤一空]’이니, 상입니다.
고성 부사(固城府使) 신경균(申慶均)은 ‘성품이 본래 고상하고 담박하여 다스림이 청렴결백함.[性本雅素 治亦廉白]’이니, 상입니다.
문경 부사(聞慶府使) 김정근(金禎根)은 ‘관문의 요충지를 단단히 막은 것이 장성(長城)처럼 우뚝함.[截住關隘 屹如長城]’이니, 상입니다.
청도 군수(淸道郡守) 송병종(宋秉琮)은 ‘이미 호남에서 치적을 보였고 영남에서도 칭송이 들림.[已見湖治 又聞嶺頌]’이니, 상입니다.
초계 군수(草溪郡守) 이찬희(李贊熙)는 ‘화락하고 차분한 다스림이 조리(條理)가 있음.[雍容之治 有條有理]’이니, 상입니다.
함양 군수(咸陽郡守) 김영순(金永順)은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질병이 간혹 업무에 방해가 됨.[莅雖未久 病或妨務]’이니, 중입니다.
영천 군수(永川郡守) 남정헌(南廷獻)은 ‘백성은 칭송하고 아전은 교활하나 공포(公浦)를 서둘러 공정하게 함.[民頌吏猾 亟淸公浦]’이니, 상입니다.
예천 군수(醴泉郡守) 조원하(趙爰夏)는 ‘맨 먼저 승리를 거두어 영저(嶺底)가 덕분에 안정됨.[首先一捷 嶺底賴安]’이니, 상입니다.
영천 군수(榮川郡守) 박용빈(朴容斌)은 ‘부임하여 정무에 귀를 기울이니 백성이 바야흐로 기대하고 있음.[莅纔屬耳 民方拭目]’이니, 상입니다.
흥해 군수(興海郡守) 안효제(安孝濟)는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풍기 군수(豐基郡守) 이인면(李寅冕)은 ‘다스리는 법도가 노련하고 빛나는 명예를 구하지 아니함.[老鍊治規 不求赫譽]’이니, 상입니다.
양산 군수(梁山郡守) 류인목(柳寅睦)은 ‘본래 습속에 익숙하여 다스림에 진실로 수고롭지 않음.[自是慣俗 治固不勞]’이니, 상입니다.
함안 군수(咸安郡守) 임승학(林承學)은 ‘젊은 나이로 앞날이 창창하고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백성과 근심을 함께함.[竗年地步 薄試分憂]’이니, 상입니다.
곤양 군수(昆陽郡守) 송휘로(宋徽老)는 ‘힘을 다해 군사를 먹이고 정성을 다해 적도를 막음.[竭力饋餉 殫誠捍禦]’이니, 상입니다.
합천 군수(陜川郡守) 이현직(李顯稙)은 ‘모년(暮年)에 수령으로 나갔으니 머지않아 장래의 효과를 보게 될 것임.[暮年出宰 佇觀來效]’이니, 상입니다.
김산 군수(金山郡守) 박준빈(朴駿彬)은 ‘그토록 뛰어난 수단을 지녔으니 어찌 도적 막는 것을 걱정하랴.[以若手段 何憂禦匪]’이니, 상입니다.
영덕 현령(盈德縣令) 이현식(李賢植)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전을 단속함이 각기 법도가 있음.[安民束吏 各有其規]’이니, 상입니다.
의성 현령(義城縣令) 이관영(李觀永)은 ‘폐단이 이미 병통이 되었으나 기대와 바람이 더욱 간절함.[弊痼旣瘼 期望尤切]’이니, 상입니다.
경산 현령(慶山縣令) 유달준(兪達濬)은 ‘30리 되는 지역으로 잘한다는 소문이 가까이에서 들림.[一舍之地 聲聞自邇]’이니, 상입니다.
남해 현령(南海縣令) 이규풍(李奎豊)은 ‘백성에게 들으니 모두 우리 원님이라고 칭송함.[聽之於民 咸曰我侯]’이니, 상입니다.
개령 현감(開寧縣監) 민병익(閔丙益)은 ‘삼가고 신중하게 일을 해 나가니 다스림의 근본임.[謹愼做去 爲治之本]’이니, 상입니다.
의령 현감(宜寧縣監) 박제경(朴齊敬)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하양 현감(河陽縣監)은 아직 임명되지 않았습니다.
용궁 현감(龍宮縣監) 이주의(李周儀)는 ‘고을이 잔약하고 폐단이 많으니 또한 힘들지 않겠는가.[邑殘弊多 不亦勞乎]’이니, 중입니다.
봉화 현감(奉化縣監) 고영철(高永喆)은 ‘초기의 정사에 새로운 명성이 있으니 치적이 두드러질 것을 증험할 수 있음.[初政新譽 可驗著績]’이니, 상입니다.
청하 현감(淸河縣監) 송규진(宋圭晉)은 ‘흉년이 들어 유랑하는 백성에게 어찌 이리도 살아 나갈 방도를 잘 세워 주었는가.[荒歲流民 何以接 濟]’이니, 상입니다.
언양 현감(彦陽縣監) 윤홍식(尹弘植)은 ‘아전의 간사함을 어찌하여 살피지 않는가 그 책임이 돌아갈 데가 있음.[盍察吏奸 □其有歸]’이니, 하(下)입니다.
진해 현감(鎭海縣監) 구준희(具俊喜)는 ‘황폐함이 이미 눈에 넘치니 구제할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荒旣溢目 濟有何術]’이니, 상입니다.
진보 현감(眞寶縣監) 임백순(任百淳)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함창 현감(咸昌縣監) 조제호(趙霽鎬)는 ‘어찌 감히 개인에게 아부하겠는가. 백성의 칭송이 한창 자자하다.[豈敢阿私 民頌方蔚]’이니, 상입니다.
지례 현감(知禮縣監) 이재하(李宰夏)는 ‘아전과 백성이 힘을 합쳐서 한마음으로 막아 지키게 함.[吏民同力 一念防守]’이니, 상입니다.
고령 현감(高靈縣監) 김영준(金永駿)은 ‘충후(忠厚)한 자질로 정사(政事)를 순박하고 성실하게 함.[忠厚之姿 醇慤其政]’이니, 상입니다.
현풍 현감(玄風縣監) 김화식(金華植)은 ‘대대로 경내(境內)에 살아 모두 좋아하기가 어려움.[世居境內 難以盡悅]’이니, 중입니다.
산청 현감(山淸縣監) 정복원(鄭宓源)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잘 제어하여 빈민을 보살피고 적도를 무찔렀음.[柔能制强 恤蔀殪匪]’이니, 상입니다.
단성 현감(丹城縣監) 윤태일(尹泰馹)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군위 현감(軍威縣監) 이인긍(李寅兢)은 ‘완악(頑惡)한 아전을 징계하니 따라서 명령이 행해졌음.[懲吏之頑 終以行令]’이니, 상입니다.
의흥 현감(義興縣監) 성태영(成泰永)은 ‘이웃 고을에서 치적이 이미 드러나 백성의 기대가 한창 두터움.[隣績已著 民望方厚]’이니, 상입니다.
신녕 현감(新寧縣監) 권재기(權載紀)는 ‘백성의 고충을 두루 살피고 아전의 포흠(逋欠)을 엄격히 수쇄(收刷)함.[遍察民瘼 嚴刷吏逋]’이니, 상입니다.
예안 현감(禮安縣監) 이응직(李應稙)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영일 현감(迎日縣監) 이근응(李根應)은 ‘극심한 폐단과 거듭된 흉년에 어찌 이리도 고을을 잘 다스렸는가.[劇弊荐歉 何以爲邑]’이니, 상입니다.
장기 현감(長鬐縣監) 이매구(李邁久)는 ‘집이 경내(境內)에 있어 민정을 이미 잘 알고 있음.[家在境內 民情已熟]’이니, 상입니다.
영산 현감(靈山縣監) 김건한(金建漢)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창녕 현감(昌寧縣監) 조병길(趙秉吉)은 ‘강개하면서도 화락한 사람이라 종합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다스림.[慨悌其人 綜明之治]’이니, 상입니다.
사천 현감(泗川縣監) 김학모(金學模)는 ‘흉년을 구제하는 정사를 가장 시급한 사무로 여김.[濟荒之政 最是急務]’이니, 상입니다.
기장 현감(機張縣監) 손경현(孫庚絃)은 ‘부임한 지 석 달이 지났는데 칭송이 온 경내에 파다함.[莅過三朔 誦騰一境]’이니, 상입니다.
삼가 현감(三嘉縣監) 김영규(金泳圭)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비안 현감(比安縣監) 차능문(車能文)은 ‘마음으로는 잘 다스리기를 원하면서 간사함을 어찌 살피지 않았는가.[志雖願治 奸何未察]’이니, 하입니다.
웅천 현감(熊川縣監) 원직(元稷)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자인 현감(慈仁縣監) 조유승(曺有承)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영양 현감(英陽縣監) 유흥렬(劉興烈)은 ‘호좌(湖左 호남)의 문사(文士)요 영외(嶺外 영남)의 양리(良吏)임.[湖左文士 嶺外良吏]’이니, 상입니다.
칠원 현감(漆原縣監) 이돈호(李敦鎬)는 ‘백성을 걱정하는 고심(苦心)이 얼굴과 말에 넘침.[憂民苦心 溢於色辭]’이니, 상입니다.
안의 현감(安義縣監) 조원식(趙元植)은 ‘정도를 지키고 사악한 자를 죽여 온 경내를 권면함.[守正斬邪 風勵全省]’이니, 상입니다.
안기 찰방(安奇察訪) 홍성윤(洪成閏)은 ‘백성을 더욱 보살피고 근심함.[益恤憂民]’이니, 상입니다.
장수 찰방(長水察訪) 유한익(劉漢翼)은 ‘재능이 백 리를 다스리기에 충분함.[才優百里]’이니, 상입니다.
유곡 찰방(幽谷察訪) 서항보(徐恒輔)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김천 찰방(金泉察訪) 박의현(朴宜鉉)은 ‘피폐한 역을 소생시킬 만함.[弊驛可蘇]’이니, 상입니다.
성현 찰방(省峴察訪) 정한진(鄭漢鎭)은 ‘하리의 폐단을 두루 살핌.[周察吏弊]’이니, 상입니다.
황산 찰방(黃山察訪) 신학희(申學熙)는 ‘부끄러움을 끼치기에 족함.[足以貽羞]’이니, 하입니다.
사근 찰방(沙斤察訪) 최호명(崔灝明)은 ‘마정(馬政)에 유념함.[留心 馬政]’이니, 상입니다.
소촌 찰방(召村察訪) 이제정(李齊正)은 ‘수령이 될 만한 사람임.[字牧之人]’이니, 상입니다.
자여 찰방(自如察訪) 한경근(韓敬根)은 ‘말구유나 살피는 낮은 자리에 두기 아까움.[惜屈馬槽]’이니, 상입니다.
송라 찰방(松羅察訪) 김학로(金學魯)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창락 찰방(昌樂察訪) 김형근(金瀅根)은 ‘아직은 비난이나 칭찬이 없음.[姑無毁譽]’이니, 상입니다.
진주 감목관(晉州監牧官) 조영순(趙永純)은 ‘빈궁한 백성을 구휼하고자 자기의 봉급을 줄임.[恤窮減俸]’이니, 상입니다.
울산 감목관(蔚山監牧官) 류진모(柳鎭模)는 ‘은혜가 다스리는 백성에게 미침.[惠及牧民]’이니, 상입니다.
금오 별장(金烏別將) 이종하(李宗夏)는 ‘특별히 남다른 은혜를 입어 성실하고 부지런히 봉직함.[特蒙殊恩 恪勤奉職]’이니, 상입니다.
천생 별장(天生別將) 유문벽(劉文璧)은 ‘낮에는 성첩(城堞)을 순찰하고 밤에는 글을 읽음.[晝以巡堞 夜則讀書]’이니, 상입니다.
독용 별장(禿用別將) 민치원(閔致源)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비하고 경계하니 은혜에 보답하는 것임.[一心守警 是爲報答]’이니, 상입니다.
조령 별장(鳥嶺別將) 최관성(崔寬成)은 ‘수비가 확고하여 경보(警報)가 없으니 누구의 힘인가.[確守無警 伊誰之力]’이니, 상입니다.
가산 별장(架山別將) 오유관(吳有寬)은 ‘잔약한 진(鎭)이지만 나라의 보장(保障)이 되는 곳임.[雖是殘鎭 保障之地]’이니, 상입니다.
금정 별장(金井別將) 배경호(裵景昊)는 ‘한 조각 외로운 성(城)이 5경(更)의 차가운 달과 같음.[一片孤城 五更寒月]’이니, 상입니다.
분산 별장(盆山別將) 배진규(裵震奎)는 ‘관문을 열고 닫는 임무가 본래 가벼운 일이 아님.[鎖鑰之任 本自非輕]’이니, 상입니다.
심약(審藥) 이진규(李振圭)는 ‘약의 성질을 잘 알고 있음.[能知藥性]’이니, 상입니다.
검율(檢律) 김응준(金應駿)은 ‘율문(律文)을 더욱 익힘.[益習律文]’ 이니, 상입니다.
병방(兵房) 박항래(朴恒來)는 ‘병정을 훈련하고 군대를 행진하면서 은혜와 위엄을 함께 시행함.[鍊丁行旅 恩威幷施]’이니, 상입니다.
영관(領官) 박찬규(朴燦圭)는 ‘지혜가 있고 모략(謀略)이 있어도 이 덕을 지닌 장수만 못함.[有智有謀 莫如福將]’이니, 상입니다.
영관 최처규(崔處圭)는 ‘동서(東西)로 분주히 뛰어 적도를 소탕하고 백성을 위무함.[東馳西驅 剿匪撫民]’이니, 상입니다.
군사마(軍司馬) 김영훈(金永勳)은 ‘크고 작은 일에 모두 능하여 어떤 일이든 적합하지 않음이 없음.[能大能小 無適不宜]’이니, 상입니다.
문안(文案) 이종형(李鍾瀅)은 ‘전보(電報) 업무를 겸하여 관리하는데 오히려 아무 문제가 없음.[兼管電務 倘無相妨]’이니, 상입니다.
문안 이근중(李根中)은 ‘필요한 인재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애석함.[需用之材 可惜潦倒]’이니, 상입니다.
문안 서상석(徐相奭)은 의망(擬望)하여 단자(單子)를 작성해 올렸습니다.
군의(軍醫) 백문혁(白文赫)은 ‘사졸이 질병이 없으니 의술을 장차 어디에 시험하랴.[士卒無病 醫將何試]’이니, 상입니다.
올해 추동등(秋冬等) 포폄(褒貶)을 전례대로 마련하여 계문합니다. 수령(守令)에 대한 등제(等第)를 병사(兵使)・수사(水使)와 함께 논의하는 한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삼가 『대전회통(大典會通)』 「포폄 조(褒貶條)」의 증주(增註)에 따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병영(兵營) 영하읍(營下邑) 수령의 군정(軍政)에 대한 포폄은 계하(啓下)한 새 정식(定式)에 따라 직접 각 해당 영(營)이 신의 감영에서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창원 부사 이종서, 상주 목사 이만윤, 의령 현감 박제경, 진보 현감 임백순, 예안 현감 이응직, 삼가 현감 김영규, 웅천 현감 원직, 자인 현감 조유승, 유곡 찰방 서항보, 송라 찰방 김학로, 금정 별장 배경호 등은 부임한 날짜가 얼마 안 되고, 진주 목사 허철, 동래 부사 정인학, 흥해 군수 안효제, 단성 현감 윤태일, 영산 현감 김건한 등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고, 김해 부사와 하양 현감은 아직 임명되지 않았 고, 친군남영 문안(親軍南營文案) 서상석은 의망하여 단자를 작성해 올렸으나 아직 조정의 회답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모두 현주(懸註)하였습니다. 경주・안동・상주・진주・성주 등의 판관(判官)은 임시로 폐지했고 각 관(官)의 훈도(訓導)와 경주・안동・상주・진주 등의 교수(敎授)는 혁파하였고, 도사(都事)는 감생청(減省廳)의 관문을 따라 감하(減下)하였으므로 모두 등제를 하지 않았고, 통영(統營)이 관리하는 진(鎭)에 대한 포폄은 통제사(統制使) 홍남주(洪南周)의 임기가 차기를 기다린 뒤에 함께 논의할 계획입니다. 도개(刀改, 글의 내용을 칼로 긁어 고침)한 곳은 없습니다. 이러한 연유를 모두 치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