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하는 일입니다. 저번에 부산항(釜山港) 감리(監理)의 전기(電奇, 전보로 알린 기별) 내용에,
“외무아문(外務衙門)의 감칙(甘飭) 안에 ‘일인(日人)이 요청한 것에 따라 모군(募軍, 모집한 인부)과 우마(牛馬) 등에 관한 일을 각 관(官)에 신칙하여 고급(雇給, 인부나 소・말 등을 삯을 주고 구하여 지급함)하라.’고 하였다. 일본 육군 일행이 그사이에 계속 대구부(大邱府)에 올라와서 그 지폐를 엽전으로 바꿔 달라고 청하였는데 때마침 공전(公錢)이 부족한 때여서 그들이 꾸어 달라는 대로 가까스로 1만 냥을 장만하여 차례로 꾸려서 보냈으나 그 뒤에 이어지는 책응(責應, 요구에 응함)을 아직까지 조획(措劃, 조처하여 해결함)한 것이 없고 모군에게 말하면 전후의 행군(行軍)이 거의 빈 날이 없다시피 하니 모군의 명색을 매번 책응하는 일이 많게는 6~7백 명이나 되고 적을 때에도 간혹 4~5백 명이니 복마(卜馬)를 책출(責出)하는 수효가 간혹 4~5십 필에 이르며 그들이 경유하는 연읍(沿邑)은 수응(酬應)하는 일에 시달리고 또 고가(雇價)를 본래 그 일행 중으로부터 ‘아직 갚을 돈이 없으니 서울에 도착한 뒤 계산하여 정부(政府)에 보고하겠다.’고 말하고는 출발할 때에 단지 엽전 2전 5푼씩을 1명당 출급(出給)하여 고군(雇軍, 삯군)들이 거의 모두 도타(逃躱, 도망하여 피함)하게 되었으며 책립(責立)하는 일을 형세상 강제로 하기가 어렵다고 읍에서 똑같이 보고하였을 뿐 아니라, 사세를 참작하건대 참으로 시행을 해도 그대로 되지 않을 일이다.
그러므로 우선 어떤 공전(公錢) 중에서 고세(雇貰)를 준급(準給)한 뒤 보고하도록 연읍에 신칙하고 모두 보고하기를 기다려 차례대로 성책(成冊)을 만들어 치보할 계획이오며, 지폐를 바꿔 달라고 강제로 독촉하는 것과 복마와 고군을 책립하는 것이 거의 한절(限節)이 없어서 머지않아 말썽거리가 생길 것이니 매우 민망하다.”
라고 하였으므로 연유를 사실에 근거하여 수보(修報)합니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