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방대(淸州地方隊)에서 잡은 비적의 우두머리 서석여(徐石汝), 김시묵(金時默)과 임경원(林景元)의 아들 도호(道浩)를 압송해 오기를 기다려 사실에 따라 심문하고 정리하여 알리겠다는 뜻을 이미 보고하였습니다. 이번 달 20일에 위 죄인 세 명을 청주지방대에서 압송하였기에, 형구(刑具)를 설치하고 면밀히 조사하여 심문하니, 청주군 산외면(山外面) 금암(琴巖)에 사는 서석여(48세)가 아뢰길,
“저는 갑오년 8월 동학이 번성할 때에 거괴(巨魁) 손사문(孫士文)의 포(包)에 소속된 접주로서 도망가 숨어 있다가 지금 다행히 접으로 돌아왔습니다. 뜻하지 않게 올해 음력 3월 25일에 고을의 이름은 모르고 전에 강원도에 살았다는 강채수(姜采水)라고 이름한 놈이, 저희 집에 와서 억지로 권하기를 이와 같이 흉흉한 세상에 단(壇)을 세워 치성(致誠)하는 것이 화를 막는 데 가장 합당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음력 4월 초1일에 마침내 깨끗이 청소하고 향을 피웠습니다. 『동경대전(東經大全)』은 전에 가지고 있던 것인데 접에 돌아온 후에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집 안에 두었다가 이 때문에 체포되었습니다. 이 밖에는 이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청주군 산외면 사동(寺洞)에 사는 김시묵(38세)이 아뢰길,
“저는 본래 손사문의 포에 소속된 접주로 다행히 목숨을 보존하였는데, 음력 3월 25일에 서석여가 통문(通文)을 강채수로 하여금 저에게 전하여 권하길, 다시 동학을 일으키려고 단을 설치하여 치성한다 하는 바, 저는 끝내 참여하지 않았으며 동학의 여러 물건들은 강채수에게 맡겨 둔 것입니다. 달리 이를 만한 것은 없습니다.”
청주군 산외면 사동에 사는 임도호(19세)가 아뢰길,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동학의 접주로 오랫동안 도망 다니다가 최근 비록 왕래하나 여전히 집 안에 없습니다. 경통(敬通)은 서석여가 보내서 맡아 둔 것이나 그 까닭을 모릅니다. 달리 이를 만한 것은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서석여와 김시묵 두 놈은 모두 비적의 우두머리로 애초에 체포에서 벗어난 것이 이미 요행이었습니다. 지금 또 (죄를) 싹틔워 하늘의 형벌을 면하기 어려운데도, 이와 같이 진술을 꾸며 대는 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그뿐 아니라 단을 설치하여 치성한 것과 기한을 정하여 통문을 보낸 것이 근거가 명확하고, 소위 『동경대전』과 경통등본책자(敬通謄本冊子), 명첩(名帖) 및 잡다한 문적, 치성하는 여러 도구가 예전과 같이 다시 일으키려는 증거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임도호의 경우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었고 나이가 어려 생각이 없으니 헤아려 처리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제반 증거물은 별지에 아래와 같이 적어서 일체 올려보내니 살펴보시고 지령하시기를 바랍니다.
건양 원년(1896) 6월 23일
공주재판소 판사 이건하
법부대신 한규설 각하
별지
『동경대전』 1권
황촉(黃燭)
백단향(白檀香)
축문(祝文) 2장
이상 서석여의 집에서 나옴.
『동경대전』 1권
「포덕문(布德文)」 1권
경통책자 1권 병신년 2월 일
안은 붉고 겉은 검은 지관[內紅外黑紙冠] 1개
안은 붉고 겉은 검은 초관[內紅外黑綃冠] 1개
이상 김시묵의 집에서 나옴.
종이 차일(遮日) 1개
명첩(名帖) 12장
부지(符紙) 1장
경통(敬通) 1장 병신년 2월 일
이상 임도호의 집에서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