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군수 조응현(趙應顯)의 보고서를 접수하여 보니 그 안에,
“본군의 전전 군수 김병숙(金炳塾)이 해를 당한 일은 듣기에 두려워서 소름 끼치는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담력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지난 음력 6월 28일에 읍내 밑에 사는 송갑봉(宋甲奉)이 관아에 들어와 발괄(白活)하기를,
‘저는 본래 김씨들의 하인[傔從]으로 한번 상전이 피해를 당한 후에 향하여 거처할 곳이 없음으로 인하여 이 고을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 동학도의 소요 때에 관문에 총을 쏘아 군물(軍物)을 빼앗아 버리고 심지어 저의 상전에게 바로 향하여 총을 쏘고자 하고 의병을 칭하고 와서 소란을 피우던 박만귀(朴萬貴)라고 이름하는 놈을 지금 만났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떨리고 몹시 두려워 비록 곧바로 타살하고자 하였으나 법의 정신이 있는데 경솔하게 앞질러 행하는 것이 불가하니 문밖에서 기다려 잡았으니 법에 비추어 처벌하여 원통함을 풀어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박만귀를 즉시 잡아들여 동도(東徒) 때의 행패와 비요(匪擾) 때의 못된 행실을 엄히 조사하여 궁구하여 물은즉 고하기를,
‘제가 본래 사냥꾼[獵手]으로 생업을 삼고 있었는데, 갑오년(1894, 고종31)에 천안 삼거리 동학접주 정정이(鄭正已)가 끝도 없이 악형(惡刑)하여 결국 그 무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본 고을의 군기(軍器)를 빼앗아 갈 때에 관문을 총으로 쏘고 관방(官房)에 난입하고 관가(官家)에 대하여 포를 쏘려고 한 것은, 비록 이 정가의 위협으로 한 것이나 스스로 둘러보고 범한 것인즉 죽어도 애석함이 없습니다. 그 후 동비가 패한 후에 도망하여 연기(燕岐)의 봉암(鳳岩)에 숨어 엎드려 있다가, 지금 곧 직산(稷山) 땅에서 남의 품팔이[傭賃]하였고, 의병에는 애초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세월이 매우 오래되어 이제야 세상에 나왔다가 지금에 이르러 체포되니 가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대저 갑오년의 동비는 혹 사설(邪說)에 미혹된 벌레 같은 백성도 있고 혹은 위협에 겁먹어 가담한 순박한 백성도 있으므로, 이제 자기를 새롭게 하는 때에 진실로 엄하게 벌줄 필요는 없지만, 지금 이 박만귀는 그 행위를 들어 보고 그 모양을 살펴보니, 전일에 관문에 총을 쏘고 군기를 빼앗아 간 것은 충분히 즐겁게 행동한 것이요, 또 하물며 관방에 돌입하여 관장(官長)을 대하여 총을 쏘려고 한 것은 어찌 그 마음가짐이 너그러운 자가 하는 행동이겠습니까! 그때 읍교(邑校) 박세춘(朴世春)이 그의 삼종숙(三從叔)으로 한사코 만류하다가 도리어 구타를 당하니 죄과를 범한 이외에 또 패륜(敗倫)을 더하였습니다. 이른바 의병 때에 따라나선 것은 그가 비록 변명하였으나, 많은 사람의 눈을 가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무리는 지나간 일이라 하여 처벌을 논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우선 엄한 장형[嚴杖] 20대에 칼을 채워 감옥에 가두고 이에 보고하니 법률에 의하여 처분하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동비 때의 일은 비록 예전의 허물에 속하나 범인의 정황이 그와 같이 패악하여 항상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실로 법의(法意)가 아니요 추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당 군에 지칙(指飭)하여 다시 진술을 받아 보고하게 하고, 그 진술을 별도로 기록하여 보고하니 조사하여 처분하시기를 바랍니다.
광무 2년(1898) 9월 17일
충청남도재판소 판사 정주영
의정부찬정 법부대신 신기선 각하
별지
・피고 박만귀(朴萬貴) 35세
저의 소회는 이미 전일에 물어보신 장소에서 모두 실토하였습니다. 제가 본래 천안에서 나고 자라서 온양(溫陽) 세교(細橋)에서 살고, 평소 화포(火砲)를 익혀 사냥을 직업으로 하다가, 갑오년에 천안 삼거리 동학접주 정정이가 무수히 악형(惡刑)하여 끝내 그 무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본 고을의 군기(軍器)를 빼앗아 갈 때에, 관문을 총으로 쏘고 관방(官房)에 난입하고 관가(官家)에 대하여 포를 쏘려고 한 것은, 비록 이 정정이의 위협에 의한 것이나 스스로 돌아보고 범한 것으로 죽어도 애석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저의 삼종숙(三從叔) 본읍 순교(巡校) 박세춘(朴世春)이 저에게 대하여 이치에 의거하여 그것을 꾸짖고 화포를 빼앗으려 하고 한사코 만류하니, 무리들이 만약 속마음을 안다면 도리어 저의 족숙(族叔)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 생면부지인 것처럼 꾸미고 등을 떠밀어 물리쳤습니다. 어찌 삼종숙을 구타할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동비가 모였던 목천(木川) 세성산(細城山)에서 패한 이후에, 저는 연기(燕岐)의 봉암(鳳岩)에 숨어 엎드려 있다가, 지금 곧 직산(稷山) 땅에서 남들에게 품팔이[傭賃]하고 세월이 오래되어 비로소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송갑봉(宋甲奉)을 만나 결국 체포되었으니 이는 가히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고 할 만합니다. 의병에는 혹 비슷한 사람이 있어, 와서 난리를 부렸을지 모르나 저는 처음부터 따르지 않았으니 살펴 처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