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부 전훈(電訓) 안에,
‘무주(茂朱) 덕유산(德裕山)의 동학의 남은 무리가 점차 성하여 하늘에 제사 지낸다는 설이 낭자하게 들리니, 순검을 파견 염탐하여 잡아서 급히 보고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곳에 순검을 파견하여 몰래 염탐하고, 한편으로 해당 군에 훈령을 내리고 비밀리에 신칙하였으나, 지금 이 무리가 종적이 없습니다. 근래에 듣기로 고산(高山), 여산(礪山)과 은진(恩津), 연산(連山) 등지에 이 무리들 몇 명이 몰래 통하고 서로 만나니 자못 수상하다고 합니다. 기찰을 두지 않고 나타나는 대로 사냥하여 은밀하게 움직여 잡을 뜻으로, 말을 만들어 각 군에 훈칙(訓飭)하였습니다. 바야흐로 또한 다방면으로 정탐할 때 상무사(商務社) 도장무원(都掌務貟) 정인택(鄭寅澤)의 보고서를 받아 보니 그 안에,
“본사의 도공사원(都公事貟) 이규환(李圭煥)이 각처를 두루 다니다가 여산 북면(北面) 죽림동(竹林洞)에 사는 고문선(高文詵)이 동학도 중의 유명한 거괴(巨魁)로, 갑오년(1894, 고종31) 동학도의 소요 때에 법망에서 빠져 있다가 지금 또 무리들을 불러 끌어 모으는 정황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그의 집에 도착하여 힘을 써서 체포하여 오고, 그 이른바 ‘전도차첩(傳道差帖)’과 ‘염주투서(念珠套署)’와 하늘에 제사 지내는 향촉(香燭) 등의 도구들과 모임을 약속하는 통문과 주술 부적(呪符)과 경문(經文) 등의 책자와 보자기 1개를 숨겨 놓은 것을 찾아왔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고문선을 곧바로 압송하여 압수한 물건을 낱낱이 살펴보니 곧 과연 상무사의 보고 중에 나열한 것과 같으니, 갑오년(1894)부터 지금까지 해괴한 흔적이 절절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문선을 본 재판소로 잡아들여 전후 정황과 무리들이 몇 명인가를 엄격히 조사하여 심문하였습니다. 진술하기를,
“저의 나이가 지금 46세인데 본래 전주(全州) 용두치(龍頭峙) 아래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지난 갑오년에 동학에 입도하여 대접주로서 그해 가을에 무리 백여 명을 이끌고 진영(鎭營)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곧 거처를 동헌(東軒) 상방(上房)으로 하고, 본주(本州)의 읍촌(邑村) 각처의 부잣집[饒富人家]에 포군(砲軍)을 나누어 보내고 재물을 청하는 도움을 구하여, 돈을 혹 20~30냥 혹은 70~80냥을 얻어 와서 접중(接中)에 보태어 썼습니다. 부내(府內)에 백가(白哥)란 자가 있어 도를 매우 훼손한다고 하므로, 진정(鎭庭)에 잡아와서 곤장 30여 대를 때리고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얘기에 백가가 그로 인하여 죽었으며 겨울 사이에 이르러 중앙군(京兵)이 내려온다는 소문이 있었으므로 허물어져서 흩어졌는데, 저는 곧 도망하여 여산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9월에 임피(臨陂) 오성산(五城山) 산막리(山幕里)에 사는 김준회(金俊會)가 와서 말하길, ‘다시 동학을 설(設)하면 실효를 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흉(凶)한 것을 피하고 길(吉)한 것을 취하기 위하여, 몇 군데 잘 아는 사람에게 가서 동학을 다시 설할 뜻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권했습니다. 비록 혹시 따르지 않는 자가 있었으나, 또한 혹시 응하여 따르는 자가 있었으므로 단지 기쁘게 따르는 자에게 도를 전하였습니다. 도를 받은 자는 여산 황화정(皇華亭)의 고성화(高成化)・정낙현(鄭洛玄)・정봉술(鄭奉述)・서찬경(徐贊京)・이노돌(李老突)과 고산(高山) 대치리(大峙里)의 김금석(金今石)・김갑동(金甲同)・강윤실(姜潤實)・강완실(姜浣實)・배종갑(裵宗甲)과 은진(恩津) 강경포(江鏡浦)의 류화인(柳化仁) 등이었습니다. 전해 들으니 즉 은진 남산리(南山里)의 손광현(孫光玄)과 부안(扶按)의 김여중(金汝中)이 모두 동학의 거물입니다.”
라고 하여 진술과 자백이 명백하였습니다.
광무 4년(1900) 2월 7일 법부 제6호 훈령에 ‘징역형 종신 이상이라도 정황을 조사하고 따져서 법률을 헤아려 선고하고, 안을 만들어 질보(質報)하고 지령을 기다려 집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에 비추어 고문선을 대명률(大明律)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邪術條) 일응좌도난정지술(一應左道亂正之術)과 혹소향집중선혹인민위수자율(惑燒香集衆煽惑人民爲首者律)로 교수형에 해당하여 그 범인에게 선고하고, 이에 질품(質稟)하여 지령을 기다려 집행하려 합니다. 임피의 김준회와 여산의 고성화・정낙현・정봉술・서찬경・이노돌, 고산의 김금석・김갑동・강윤실・강완실・배종갑과 은진의 류화인・손광현, 부안의 김여중 열네 놈은 진술에 이미 나왔으므로, 일일이 염탐하여 체포하고 엄히 가두어 보고할 뜻으로, 각 군에 비밀리에 따로 훈칙하였으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광무 4년(1900) 3월 15일
전라북도재판소 판사 이완용
의정부찬정 법부대신 임시서리 의정부참정 김성근(金聲根)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