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이 통유(通諭)합니다. 삼가 아룁니다. 가라지를 뽑지 않으면 곡식이 익지 못하고, 가시나무를 베지 않으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피어나지 못합니다. 대저 우리 도가 밝혀지지 않는 것은 실로 사특한 설이 횡행하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추 부자(鄒夫子,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이단의 해악이 홍수보다 심하다.”라고 하셨으니, 이단 허무의 학설의 해악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이른바 일종 동학(東學)의 사특하고 괴이하며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말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저 최제우(崔濟愚)라고 이름하는 자는 동학의 수괴(首魁)입니다. 이 때문에 왕법(王法)을 시행하여 법대로 처형되었으니, 도망가고 숨은 잔당들은 즉시 그 옛날에 물든 못된 습관을 고쳐 문치(文治)와 교화(敎化)를 숭상하는 지극한 다스림으로 귀화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를 행하지 않고 도리어 몰래몰래 세력을 길러 점차 무성하게 불어나는 지경에 이르러 비단 서로 한통속이 될 뿐만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또 종적을 스스로 드러내어 거리낌 없이 최제우를 신원(伸冤)하자고 주장하면서 무리를 짓고 작당하여 ‘동도(東道)’라고 써서 걸고 청(廳)을 설치하고 상소(上疏)하니 아, 애통한 일입니다. 법률로 따져 응당 처형된 자는 절대로 신원하는 이치가 없으니, 최제우는 응당 신원해서는 안 되는데 어찌 쓸데없이 입을 놀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들이 대궐문 의 지척인 곳에서 소장(疏章)을 품고 간절히 청하고 있으니 그 완고하고 미련함이 과연 어떠합니까.
저희들은 비록 도성과 먼 곳에서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들이지만, 이 일을 목도하고서 저도 모르게 피가 끓는 듯하였으며 간담이 떨리고 등골이 서늘하였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쌓인 깃털이 비록 적더라도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라고 하였고, “개미굴이 비록 작더라도 한 읍을 떠내려가게 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이러한 상황에 미쳤는데도 그들을 배척하여 환하게 터놓지 않는다면, 그 형세가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를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막 저희들의 소견을 대략 아뢰어 하풍(下風)을 받들려는 참에, 가만히 들으니 이령(李令)이 상소하고 또 이어서 여러 군자들이 날을 정해 소장(疏章)을 올린다고 합니다. 이는 참으로 떳떳한 천성에서 격발된 것으로 도모하지 않아도 서로 같은 것이니, 영외(嶺外)의 뒤처진 의론이 어찌 서로 맞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여러 군자들은 부디 머뭇거리며 뒤돌아보지 말고 온 영남을 위해 앞서 인도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계사년(1893, 고종30) 2월 15일 김진휘(金縉輝), 이만구(李萬求), 서상운(徐相運), 권상문(權相文), 권대림(權大林)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