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삼가 아룁니다. 병을 치료하는 자가 한때의 어지러움을 꺼려하여 10금의 좋은 약제(藥劑)를 버린다면 병이 반드시 고질(痼疾)이 되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자가 여러 줄들이 조율되 지 않은 것을 보고 거문고의 줄을 고쳐 매는 기러기발을 바꾸지 않는다면 거문고가 반드시 조율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본읍(本邑)의 경제적 형편과 민심이 고질이 된 병과 조율되지 않은 거문고와 같은데, 몇 년째 관원이 비어 있어서 온갖 폐단이 더 생겨나 겸관(兼官)겸관(兼官)의 독촉이 서로 객제(客劑)와 생수(生手)로 도드라지는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원래는 일관되게 치료하고 조율하는 것만 못합니다. 읍의 17개의 폐단이 마침내 백성들의 소요를 불러와서 형세가 장차 뿌리가 뽑힐 지경이니, 이완과 긴장을 조절한 이후에 소생하고 조화로워지는 조짐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밝으신 사또께서 이 땅에 임금의 분부를 받들어서 장조(張趙)
처럼 청렴하고 현명하다고 부임하기 전에 소문이 퍼졌고 소두(召杜)의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은택이 공무를 살핀 후에 베풀어졌으니, 문창성(文昌星)이 돌아오고 합포(合浦)의 진주가 귀환했다고 말할 만합니다.
아, 본읍에서 백성들의 소요가 일어난 것은 비록 원통하고 억울함에서 연유한 것이지만, 또한 백성들을 격동시켜서 그러한 것이니, 속담에 이른바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정을 살펴 보면 딱하지만, 그 행위를 따져 보면 어리석은 난류(亂類)의 소치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백성들의 소요가 일어날 즈음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심을 선동하여 본 고장의 사류(士類)들이 모두 당고(黨錮)의 화에 빠져 영읍(營邑)에서 죄를 헤아려 받았으니, 어찌 감히 죄 없이 수감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만, 실정을 미루어 살펴보면 또한 화에 연루된 일로 인한 것입니다.
저희들이 참으로 응당 관을 버리고 자취를 감추고서 다시는 발걸음을 내어 저희 읍에 관한 일로 모이는 자리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합하(閤下)께서 이 피폐한 고을에서 정사(政事)를 잘하셔서 한 달도 채 못 되어 관의 업무에 익숙해져서 소 잡는 칼로 닭 잡듯 하여 칼을 대는 대로 풀리지 않음이 없었고, 혁파할 만한 것은 혁파하고 바로잡을 만한 것은 바로잡아서 간사하고 교활한 자들이 등용되지 못하였고 억눌렸던 현인(賢人)들이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으니, 추위 후의 따뜻한 봄 햇살이 거의 그늘진 벼랑을 비추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 이 덕화(德化)가 새로워지는 것을 보고자 하여 이미 꽂아진 지팡이를 다시 붙잡고 매헌(梅軒)의 아래에서 목을 빼고 와서 듣노니, 위 사항의 폐단들을 완문(完文)과 절목(節目)으로 만들어 영읍(營邑)이 성첩(成帖)하여 영구히 준행해야 할 법규로 삼고, 백성에게서 거두는 허다한 공용(公用)은 필요와 불필요, 완급(緩急)을 참작해서 긴급한 것은 헤아려 걷고 긴급하지 않은 것은 물리치며 정지할 만한 것은 정지하면 흉년이든 피폐한 이 고을의 민고(民苦)를 크게 구휼하는 일이 될 것입 니다. 백성들의 사정이 비록 곤란하지만 봉공(奉公)의 도리상 응당 써야 할 것은 부득이하게 백성에게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중에 가장 급한 것을 모아 보니 그 수가 7,880냥 3전에 이르렀는데, 민원(民願)에 따라 집집마다 분배하는 것이 이 또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편리하고 마땅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감히 한목소리로 성주(城主)께 아룁니다.
갑오년(1894, 고종31) 정월 일
후(後)
노석락(盧奭洛), 김사백(金思栢), 김호원(金鎬源), 정재봉(鄭在鳳), 박창환(朴昌煥), 조갑린(曺甲麟), 김우원(金禹源), 이병림(李炳林), 김기원(金基元), 명처홍(明處弘), 정석규(鄭錫奎), 김우정(金禹鼎), 신종억(辛鐘億), 권달원(權達元), 송석기(宋錫基), 황한규(黃漢奎), 최상모(崔尙模), 변치원(卞致元), 팽용오(彭龍伍) 등.
[제사]
필요와 불필요, 완급, 다소를 막론하고 ‘렴(斂, 거두어들임)’이라는 한 글자에서 등에 소름이 돋고 기가 움츠러드는 줄도 몰랐다. 비록 풍년이 들어 즐거운 해를 만나더라도 허름한 집에 사는 잔약한 백성들이 오히려 위로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 처자식을 기를 겨를이 없는데 하물며 이렇게 많은 돈을 더하는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마치 내가 아픈 듯하되 이미 부득이한 일에서 나왔고 이렇게 온 읍에서 함께하는 의론이 있기까지 하니, 지금은 비록 시행을 허락하지만 근심걱정이 그치지 않을 일.
17일 마포(馬浦)에서
행사(行使) (서압)
추신. 완문과 절목을 한번 두루 상세히 살핀 후 마땅한 것을 따라 시행을 허락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