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동학농민혁명 관련 고문서 東學農民革命 古文書
일러두기

고종이 양호 초토사 홍계훈(洪啓薰)에게 내린 유서(1894년 4월 2일)

숭정대부(崇政大夫) 친군장위영(親軍壯衛營) 정령관(正領官) 양호 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洪啓薰)에게 교유(敎諭)함[諭崇政大夫親軍壯衛營正領官兩湖招討使洪啓薰]

경이 양호(兩湖, 충청도와 전라도)에 관한 일을 위임받았으니 책임이 가볍지 않다. 무릇 병사를 출동시켜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것은 백성을 편안히 하고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일체 평상시 사안은 자연히 옛 법도가 있다. 그러나 혹여 내가 경과 독단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밀부(密符)가 아니면 시행할 수 없다. 또 뜻밖의 간사한 계략을 예방하지 않아선 안 되니 만약 비상한 명이 있으면 밀부를 합쳐서 의심이 없는 뒤에야 응당 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압(御押) 을 찍은 제38 밀부를 내리니 경은 이를 받으라. 그러므로 교유한다.

광서(光緖) 20년(1894, 고종31) 4월 초2일

주석
홍계훈(洪啓薰) ?~1895. 1882년(고종19) 임오군란이 발발하였을 때, 명성황후 민씨를 궁궐에서 탈출시킨 공으로 중용되었다. 1892년 5월 동학교도들이 충청도 보은에서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내걸고 모였을 때, 장위영 정령관(正領官)으 로 임명되어 경군 600명을 이끌고 청주로 출동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 나자 양호 초토사로 장위영 군사 800명을 이끌고 출전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 때 훈련대장으로 광화문을 수비하다가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밀부(密符) 조선 시대 감사(監司)·유수(留守)·총융사(摠戎使)·진무사(鎭撫使)·통제사(統制使)·병사(兵使)·수사(水使)·방어사(防禦使) 등이 부임할 때 유서(諭書)와 함께 지급한 부신(符信)으로 한 방면의 군사권을 가진 사람이 왕명이 없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밀부가 중요한 군사 직책에 있는 사람에게 지급되었다면 병부(兵符)는 감사나 병·수사 등의 고위직 외 그 휘하의 수령(守令)이나 첨사(僉使)·만호(萬戶) 등에게도 지급되었다.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