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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동학농민혁명 관련 고문서 東學農民革命 古文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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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면(麻山面) 시목(柿木)의 화민(化民) 이재희(李載凞)가 올림[麻山面柿木化民李載凞]

다음과 같이 삼가 사정의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저의 세대가 시향제(時享祭)를 지내는 산은 육창면(六昌面) 월암산(月岩山) 서쪽 기슭에 있는 유점동(鍮店洞)에 있는데, 작년 4월에 증조모의 묘를 선산 아래로 이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도 작년 10월 21일에 함평 손불면(孫佛面) 사기(沙器)에 사는 강인팔(姜仁八)의 자식이 ‘도인(道人)’이라 칭탁하고 수십 명이 우르르 떼 지어 와서 자기의 선산이 또한 근처에 있다고 말하고는 무덤을 강제로 파려 할 때 저의 80세 늙은 조부를 묶어 놓고 구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핑계는 이장을 금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돈을 갈취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습니다. 저의 선산 아래에 부장한 묘소를 자기의 선산 근처라고 칭탁하 고 이처럼 침탈하니 악형(惡刑)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을 그치지 못하였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전문(錢文) 50냥을 가져오면 그대의 무덤에 관한 일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며 파내지 않고 떠나가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애걸하여 겨우 30냥의 전문을 마련하여 주자 포박을 풀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 30여 명의 사람이 또 그렇게 오기에 몸을 피해 달아나니, 얼마 되지도 않는 가산과 기물을 모조리 쓸어간 것이 한두 번일 뿐만이 아니라 네다섯 차례에 걸쳐 와서 침탈해 갔습니다.

다행히 해와 달이 다시 밝아진 시대를 만나 강가(姜家) 놈의 종적을 탐문하니, 이름을 바꾸고 도망하였다고 하기에 우선 분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삼가 패지(牌旨)를 받들어 보니 잡아들이라는 처분이었습니 다. 저 강영모(姜永模)의 정장(呈狀)을 보니, 예의를 지키고 밭 갈며 독서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백성인데 무엄하게도 동적(東賊)으로 몰아 무고하니 어찌 놀랍고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작년 4월에 멀리 이장한 일은 산 아래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을 뿐더러, 강영모의 친족인 강응화(姜應化) 역시 산 아래의 마을에 거주하니 장례에 관한 일을 환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고를 받은 까닭의 대략을 들어 우러러 호소하오니, 참작하신 후에 따로 처분을 내려서 함평 강인팔의 자식 등을 잡아들여서 가산과 재물을 갈취한 것과 파지도 않은 무덤에 관한 일을 억지로 금지한 죄를 다스리도록 분부하실 일입니다.

성주께서 처분해 주십시오.

을미년(1895, 고종32) 3월 일

[제사]

함평 강인팔의 자식은 공문을 보내 잡아들이고, 산송(山訟) 건은 도형(圖形)을 그리고 조사·적발할 일.

초6일

형리(刑吏)

행관(行官) (서압)

주석
마산면(麻山面)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에 속했던 면의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간면(外間面)·육창면(六昌面)과 함께 군남면(郡南面)으로 통합되었다.
정장(呈狀) 사유를 쓴 소장(訴狀)을 관아에 바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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