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현감(行縣監)이 다음과 같이 하첩한다. 본관(本官)이 이곳에 부임한 지 비록 몇 개월 되지는 않았지만, 이 고을의 풍습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다. 토지는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한 데다 여러 해 흉년이 드니 순후한 풍속은 오히려 말할 것이 없고 투박한 행실이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문중(門中)의 노약자들이 혹 굶주려 들판에서 죽어 가는데도 구휼할 줄을 모르고, 당내(堂內, 팔촌 이내의 일가)의 숙질(叔姪)이 혹 등에 업고 품에 안고서 경내(境內)를 떠나는데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며, 가정의 화목이 무너졌는데도 향당(鄕黨)의 공적인 시비(是非)를 돌아보지 않고, 주머니에 여유가 있어도 매매(賣買)의 높고 낮은 시세를 놓칠까 염려하며, 심지어 형제끼리 싸우는 부끄러움이 있는데도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생각할 줄을 모른다.
또 이웃에 사는 사람의 도리로써 말해 보자면,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도와주고 어려움을 함께 구제하는 것이 바로 임휼(任恤)의 도리이다. 그런데 가난해도 도와주지 않고 죽든 말든 돌아보지 않으며, 이웃에 사는 사람이 우환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제해 주지 않으며, 앞마을이 굶주리고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으니, 어찌하여 이 고을의 풍속이 이처럼 각박하단 말인가.
비록 두세 곳 좋은 소리가 들리는 곳도 있지만, 가르치지 않고 벌주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에 특별히 신칙(申飭)하여 일일이 효유(曉諭)하노니, 각박함을 돌이켜 순박하게 된다면 어찌 몹시 가난하여 하소연할 데 없는 자들만의 다행이겠는가. 만약 혹여 뻔뻔스럽게 부끄러움 없이 완고하여 허물을 고치지 않는다면, 특별한 조처로 엄하게 다스려서 기필코 교화를 돈독히 하고 풍속을 바르게 하고자 하니, 잘 개유(開諭)하지 못한 책임은 또한 자연 돌아갈 데가 있을 것이다. 잘 살펴 시행하도록 이 하첩이 잘 도착하기를 바람.
이 하첩을 읍의 면약장(面約長)은 준수할 것.
갑오년(1894, 고종31) 3월 일 발(發)
첩(帖) (서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