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백성이 아니면 나라가 될 수 없고 백성은 나라가 아니면 백성이 될 수 없으니, 나라가 백성을 보호하고 백성이 나라를 받들어 위아래가 서로 의지하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다. 만약 백성으로서 나라의 보호를 생각하지 않아 나라를 받들 줄을 알지 못하다가 심지어 원망하고 비방하며 난리를 일으킬 것을 생각한다면 작은 난리는 징계하고 큰 난리는 주벌하는 것이 이치상 당연한 것이니, 징계와 주벌은 모두 나라의 본뜻이 아니라 실로 백성이 자초한 일이다.
근래 들어 민심이 유언비어로 소란스러워 서로 모여들어 무리를 만드니, 활빈당(活貧黨)이라는 자들이 있고 동학당(東學黨)이라는 자들이 있으며 진보회(進步會)라는 자들이 있어서 허다한 명목이 한둘이 아니다. 다만 그 대략을 들어서 논하자면 활빈당이라는 자들은 노략질과 겁박,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고 있으니 국법으로 마땅히 주벌해야 할 자들이고, 동학당이라는 자들은 요순(堯舜)과 공맹(孔孟)의 대도(大道)를 저버리고 귀신과 저주의 괴이한 술법에 의탁해서 함부로 선생과 연원(淵源)을 일컬으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모아 무리를 지어 불법을 자행하였다. 그러다가 갑오년(1894, 고종31) 이후로 부추겨서 현혹시킨 자들은 한 가지도 증명한 바가 없었고, 모여서 연합한 자들은 날마다 줄어들어 급기야 임금의 군사와 이웃 나라의 군대가 한 번의 지휘로 박멸하자 괴수(魁首) 이하가 줄줄이 주륙을 당했으니, 이들의 실패가 전감(前鑑)이 됨은 만인이 다 함께 목도한 것이다.
진보회라는 자들은 옳은 듯 보이지만 더욱 그르다. 근래 외국에 비록 민회(民會)가 있기는 하나 그 민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이미 깨우치고 명철해서 규칙이 완성되고 제도가 정해져 있어 생각이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않아 온 세상을 경동(警動)시키고 다스림에 보탬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아서 개명(開明)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하고, 단지 서로 모여서 무리를 이룬 자들은 모두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어 동학의 잔당이 아니면 곧 궁박하여 의탁할 곳이 없거나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못된 무리들이니, 저들이 어찌 민회의 본말(本末)을 알겠는가.
또 삭발(削髮)은 곧 외형을 손상시키는 것이니, 지난 을미년(1895, 고종32)과 병신년(1896)에도 차마 삭발시키지 못한 자들을 지금 어찌 차마 삭발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정치가 모두 위에 달려 있어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제도가 위에서 내려가는 것은 곧 오백여 년 동안 서로 전해 온 오래된 전통인데, 지방 고을의 어리석은 백성이 단 한 걸음도 한양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풍문만 듣고서 허물을 본받아 무리를 이루어 작당한다면 틀림없이 동학의 말로와 같게 될 것이다. 오늘날을 위한 계책은 단지 각자 자기의 생업을 편안히 영위하여 위에서 이끄는 교화를 받드는 것이 있을 뿐이니, 그렇게 한다면 어제의 난당(亂黨)이 다시 오늘의 양민(良民)이 될 것이다.
또 한 부류의 논의하는 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방백(方伯, 관찰사)과 수령(守令)이 제멋대로 탐욕을 부리고 포학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현실을 감내해야 하고, 재산을 보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조처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는 더더욱 그렇지 않다. 오늘날 국가가 다스리는 일을 개혁하여 새롭게 하고 수령을 신중히 택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원하고 있기 때문에, 본 순찰사도 순찰하는 직임에 부응하여 명을 받들어 특별히 와서 성상의 덕의(德意)를 선포하고 수령의 치적을 살피며 백성의 어려움을 물어서 직분을 다하고자 하니, 오직 너희 크고 작은 백성들은 더욱 서로를 경계하고 가르치며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을 바꾸어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돌아와 예전의 생업을 지키기 바란다. 그러면 나라는 징계하고 주벌하는 수고가 없게 되고 백성은 형륙을 범할 일이 없어져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이 본래 다른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우선 효유문을 선포하니 각자 엄히 준수하여 소홀히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