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에 오래도록 격조하여 울적하기 그지없었네. 이 맑고 화창한 날에 벼슬살이는 평온하며 참봉(參奉)의 삼종형제(三從兄弟)와 청동(淸洞)은 모두 무탈한가? 종종 그리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네. 이곳의 참판(參判)은 병을 앓은 지 보름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놀란 마음에 빨리 달려간 나머지 고된 여정과 돌림감기가 빌미가 된 줄 알았다네. 근래는 다른 증상은 없고 다만 기침과 가래로 인해 가슴 부분이 막혀서 만약 조금이라도 먹으면 곧바로 토해 내기 때문에 온전히 식사를 하지 못하며 낮에는 증상이 가볍고 밤에는 증상이 심해진다네. 지금은 만약 담수(痰嗽)를 없앤다면 다 나을 듯한데 백방으로 약을 써도 효험이 없으니, 기력이 쇠하여 야윈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네. 또 혹 오한이 들기도 하는데, 이는 기(氣)가 부족한 소치(所致)이고 마음의 병이 있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네. 의약(醫藥)을 계속 복용해도 효험이 없으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 조실(趙室)의 병은 나아지고 있어 대소가내(大小家內)에서 거동하고 있으니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네. 나 역시 여러 차례 4, 5일씩 통증으로 괴롭고 지금은 목 뒤의 머리털 난 부분[髮際]에 생긴 오래된 성이 나서 병을 앓고 난 나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직도 상하가(上下家)에 거동하지 못하고 있으니. 고민스럽고 고민스럽네.
동학(東學)의 소요가 난세(亂世)보다 심해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네. 매일 아랫마을의 행랑(行廊)에 와서 모이는데, 양반들은 숨죽인 채 감히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다네. 이들이 말하기를, “비록 재상(宰相)이라도 추궁할 일이 있으면 어려워할 것 없이 체포하여 결박하라.” 하면서 영읍(營邑)의 명령을 아이들 장난처럼 보고 있네. 그가 위엄과 복(福)을 스스로 만들어 발이 도리어 위를 차지한 격이라 기강과 명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네. 묘당(廟堂)은 어찌 영칙(令飭)이 없는 것인가? 이미 한 달 남짓이 지나는 동안 온갖 변고가 있는데도 아직도 움직일 기미가 없으니, 만약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장차 농사(農事)를 폐할 것이고, 비록 벼슬아치라 하더라도 장차 그것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네.
입격(入格)한 진사(進仕)가 반드시 영예롭게 도착함이 분명 있을 것이네. 전에는 미리 통지해 주었는데 당나귀[長耳]는 그간에 이미 찾아왔는가? 최근의 서울 소식은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으니 들은 대로 적어서 보내주게. 나머지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 두었으니 가져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네. 이만 줄이네.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네.
갑오년(1894, 고종31) 4월 2일. 백형(伯兄)